일부 외국계 펀드가 국내 상장사의 해외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사들이면서 투자 리스크 최소화 차원에서 매입 자금 중 일부를 일정기간 외국계 은행 등에 예치할 것을 요구해 논란이 일고 있다. 16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최근 해외 BW CB를 발행한 기업 중 10여곳이 투자유치 과정에서 외국계 펀드의 요구로 유치자금의 30~60%가량을 예치키로 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기업이 해외에서 유치한 자금 가운데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금액은 훨씬 적어지게 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법규위반이나 허위공시로 해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코스닥업체인 T사는 최근 500만달러 안팎의 CB를 발행,한 미국계 펀드가 이를 인수키로 했다. 하지만 납입금액의 30%가량을 외국계 은행에 맡겨야 했다. 향후 회사의 신제품 발표 결과와 주가 향방에 따라 이 예금을 회사측이 찾아갈 수 있다는 조건이었다. 이 회사 외에 최근 CB발행 업체 중 30~40%가량을 예치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한 업체의 경우는 60%까지 예치했다는 후문이다. 외국계 펀드들의 이 같은 '꺾기' 요구는 CB전환 등을 통한 차익을 노리면서도 투자 리스크는 줄이기 위한 '편법'으로 풀이된다. 심지어 '꺾기' 외에 주식전환 가능기간 전 해당업체로부터 주식을 빌려 매매할 수 있도록 옵션을 요구하는 외국계 펀드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로선 투자자금 유치와 외국인 지분 확대 효과를 위해 이 같은 요구를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한 증권사 국제금융팀장은 "무보증 무담보 채권을 인수하다 보니 투자자 입장에서 일종의 헤지(위험회피)를 내건 것"이라며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이를 풀어주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꺽기 관행이 일종의 파생상품거래에 해당된다며 법 위반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내국인과 외국인의 파생상품 거래는 한국은행의 승인사항이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등에서도 위반여부에 따른 평가가 엇갈린 만큼 한국은행이나 금융감독원이 관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공시위반 가능성도 제기된다. 또다른 증권사의 국제금융팀 관계자는 "투자자들은 공시내용만 보고 외자유치에 따른 재무구조 개선이나 설비투자 등을 기대하지만 실제 납입금액은 이에 미치지 못하는 만큼 허위공시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일부 기업들이 은행대출은 힘들고 증자를 여러 번하기도 부담되다 보니 외국계 펀드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이고 있다"며 "결국 국내 투자자들이 상대적으로 피해를 입게 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