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늘어나도 돈 못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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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성남시 분당에 사는 중견기업 A사의 김모 과장(38)은 그동안 1주일에 한번 하던 가족 외식을 이달부터는 2주에 한번으로 줄이기로 했다.
노후 대비로 지난달부터 개인연금저축 불입액을 월 15만원에서 30만원으로 늘리면서 그렇지 않아도 빠듯한 생활비가 더욱 줄었기 때문이다.
김 과장의 봉급은 보너스를 빼고 월 270만원.이중 세금(7만5000원)과 국민연금(14만5000원) 의료보험료(6만8000원) 등을 제하고,32평형 아파트(시세 5억원)의 은행 주택담보대출금(1억7000만원) 이자 70여만원을 내면 160만원 정도를 손에 쥔다.
여기서 종신보험(20만원) 개인연금(30만원)에 두 아들의 유치원비(30만원)와 아파트 관리비(20만원) 등을 내고 나면 쓸 돈이 거의 없다.
게다가 앞으론 금리까지 올라간다고 하니 걱정이 여간 아니다.
최근의 소비 침체가 단순한 경기 부진의 여파가 아니라 노후 대비와 각종 세금 및 부담금 등의 증가로 인한 가계 가처분 소득 감소 등 구조적 요인 때문이란 지적이 나왔다.
김 과장과 같은 중산층 봉급쟁이들조차 세금과 주택담보대출 이자 부담에 노후연금저축까지 늘리면서 허리띠를 졸라매 소비가 되살아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17일 '최근 소비환경 변화의 정책과제'란 보고서를 통해 지난 2002년 상반기부터 2005년 상반기까지 우리 경제는 연평균 3.7%의 완만한 성장세를 보였으나 같은 기간 1인당 소비증가율은 연평균 0.2%씩 감소했다고 밝혔다.
국내 소비가 경기 상황과 무관하게 추세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한상의는 이 같은 민간소비 감소는 △인구 고령화에 따른 노후 대비 부담 증가 △세금과 사회부담금 증가에 따른 가계 가처분소득 감소 △세계화에 따른 해외 소비 확대 등 소비 환경의 구조 변화가 주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노후대비 저축 늘려
고령화가 급진전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노후를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개인들이 소비를 줄이는 대신 저축을 늘리는 추세다.
이 같은 경향은 경제력이 안정돼 소비지출이 컸던 40~50대 중장년층에서 뚜렷하다.
지난 1980년대 말 40%에서 줄곧 떨어지던 국민총저축률(총저축/국민총가처분소득)은 지난 2002년 31.3%를 바닥으로 다시 상승하기 시작,지난해 34.9%를 기록했다.
한국은행 박진욱 경제통계국 차장은 "개인들의 노후 불안감이 커지면서 연금 등 저축을 늘리는데다 2002년 이후 카드부채 등을 갚는 '강제 저축'이 증가하면서 총저축률이 올라가고 있다"며 "이 같은 저축 증가는 최근 소비 부진의 근본 원인"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일반 중산층들이 노후 대비용 투자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구입한 주택의 이자 부담도 가계소비를 줄이고 있다.
지난 9월 말 현재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185조8780억원으로 연간 이자(연리 5% 가정)부담만 10조원에 달한다.
이는 연간 민간소비액 400조원(2004년 기준)의 2.5% 수준이다.
◆국민부담금은 계속 늘고
지난 2000년 이후 꾸준히 늘고 있는 조세와 사회보장비 등 국민부담금도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줄여 소비를 위축시키고 있다.
실제 세금과 국민연금 등 가계의 비(非)소비지출 증가율은 지난 2002년 이후 10%를 웃도는 두자릿수 신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같은 기간 중 5~6%였던 소득증가율을 두 배 정도 웃도는 것.때문에 가계가 실제 소비에 쓸 수 있는 가처분소득 증가율은 소득증가율을 밑돌고 있다.
실제 국민 한 사람이 납부해야 할 세금과 사회보장기여금 등 국민부담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내년 1인당 국민부담금은 465만원으로 올해 426만원보다 9.2% 늘어날 전망이다.
이 중 1인당 조세부담액은 내년에 356만원으로 올해 331만원에 비해 7.6% 증가할 예상이다.
관계자는 "사회복지 재정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에 국민부담금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이런 추세는 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차병석·김동윤·유창재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