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고령화와 세금을 비롯한 각종 부담금 증가 등으로 가계의 가처분 소득이 지속적으로 둔화,최근의 소비 부진을 구조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 도·소매 등 일부 소비지표가 회복 조짐을 보이고는 있지만 이 같은 구조적 변화로 인해 예전과 같은 대폭적인 내수 확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진단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17일 '최근 소비환경 변화의 정책과제'란 보고서를 통해 지난 2002년 상반기부터 2005년 상반기까지 우리 경제는 연평균 3.7%의 완만한 성장세를 보였으나 같은 기간 1인당 소비증가율은 연평균 0.2%씩 감소했다고 밝혔다. 국내 소비가 경기상황과 무관하게 추세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한상의는 이 같은 국내 소비 감소는 △인구 고령화에 따른 노후 대비 부담 증가 △세금과 사회부담금 증가로 인한 가계 가처분 소득 감소 △세계화에 따른 해외 소비 확대 등 소비 환경의 구조 변화가 주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국내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노후 불안을 덜 연금 개혁과 함께 교육 의료 레저 등 서비스 산업 규제 완화와 시장 개방을 통해 해외 소비 수요를 국내에서 흡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불안한 노후 대비,지갑 닫는다 고령화가 급진전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노후를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개인들이 저축을 늘리는 추세다. 이 같은 경향은 경제력이 안정돼 소비지출이 컸던 40,50대 중장년층에서 뚜렷하다. 지난 1980년대 말 40%에서 줄곧 떨어지던 국민총저축률(총저축/국민총가처분소득)은 2002년 31.3%를 바닥으로 다시 상승하기 시작,지난해 34.9%를 기록했다. 박진욱 한국은행 경제통계국 차장은 "노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연금 등 저축을 늘리는 데다 2002년 이후 카드부채 등을 갚는 '강제 저축'이 증가하면서 총저축률이 올라가고 있다"며 "이 같은 저축 증가가 최근 소비 부진의 근본 원인"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일반 중산층이 노후 대비용 투자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구입한 주택의 이자 부담도 가계소비를 줄이고 있다. 지난 9월 말 현재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185조8780억원으로 연간 이자(연리 5% 가정) 부담만 10조원에 달한다. 이는 연간 민간소비액 400조원(2004년 기준)의 2.5% 수준이다. ◆국민부담금은 계속 늘고 2000년 이후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조세와 사회보장비 등 국민부담금 증가도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줄여 소비를 위축시키고 있다. 세금과 국민연금 등 가계의 비(非)소비지출 증가율은 2002년 이후 10%를 웃도는 두 자릿수 신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같은 기간 중 5~6%였던 소득증가율을 두 배 정도 웃도는 것.이 때문에 가계가 실제 소비할 수 있는 가처분소득 증가율은 소득증가율을 밑돌고 있다. 국민 한 사람이 납부해야 할 세금과 사회보장기여금 등 국민부담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내년 1인당 국민부담금은 465만원으로 올해 426만원보다 9.2% 늘어날 전망이다. 1인당 조세부담액은 내년에 356만원으로 올해 331만원에 비해 7.6%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재경부 관계자는 "사회복지 재정 수요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국민부담금은 늘 수밖에 없다"며 "이런 추세는 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쓰더라도 해외에서 해외여행과 유학 등이 늘어나면서 해외 소비가 급증하고 있는 것도 국내 소비를 줄이는 요인이다. 여행수지를 포함한 서비스수지는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94억8000만달러 적자였다. 지난해 적자액 87억6000만달러를 이미 넘어선 것. 이 추세라면 올 적자액은 150억달러에 육박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서민·중산층은 쓸 돈이 없어서 못 쓰고,그나마 여력이 있는 고소득층은 국내가 아닌 해외에 나가서 돈을 쓰는 것이 문제"라며 "이런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못하는 한 본격적인 민간소비 회복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손영기 대한상의 경제조사팀장은 "교육 의료 레저 등 서비스 산업에 대한 규제 완화와 시장 개방을 통해 해외 소비 수요를 국내에서 흡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병석·유창재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