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고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일터에서 보내는 직장인들.직장은 이들에게 삶의 터전이자 행복의 바로미터다. 한국경제신문과 엘테크신뢰경영연구소가 2002년 '훌륭한 일터상(GWP·Great Work Place)'을 제정한 것도 '직장인들에게 출근이 즐거운 회사를 만들어줄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에서였다. 훌륭한 일터란 어떤 곳일까? 19일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열린 훌륭한 일터 좌담회에 참석한 최고경영자(CEO)들의 의견은 '신뢰를 주는 회사'로 모아졌다. 회사를 신뢰할 수 있어야 자부심과 재미도 생겨난다는 것.이봉구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이 사회를 맡은 이날 좌담회에는 제4회 훌륭한 일터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김종신 한국서부발전 사장과 신상훈 신한은행 행장이 참석했고 엘테크신뢰경영연구소의 이관응 소장이 자리를 함께했다. [ 참석자 ] 신상훈 신한은행 행장 김종신 한국서부발전 사장 이관응 엘테크경영연구소 소장 -------------------------------------------------------------- ▷사회(이봉구 논설위원)=훌륭한 일터의 개념에 대해 설명해 달라. ▷이관응 소장=훌륭한 일터는 1980년대 후반 미국의 로버트 레버링 박사가 일하기 좋은 기업은 어떤 기업인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개념화한 것이다. 레버링 박사에 따르면 일하기 좋은 기업은 신뢰와 자부심,재미가 있는 회사다. 그 중에서도 신뢰를 가장 중요하게 본다. 훌륭한 일터를 만드는 과정을 '신뢰경영'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회=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신뢰를 쌓기 위해 경영자로서 어떤 것에 역점을 두고 있는가. ▷김종신 사장=신뢰는 커뮤니케이션에서 생겨난다. 부부간의 신뢰나 경영진과 임직원 사이의 신뢰 모두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대화를 많이 해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우리회사의 종업원은 내가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일을 하는지 다 안다. 열린 경영을 하기 때문이다. 종업원이 사이버 공간에서 내게 건의할 수 있는 'CEO 핫라인'도 있다. 그 밖에 젊은 직원들의 이사회인 주니어보드나 워크숍 엠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신상훈 행장=신한은행은 올해로 창립 23주년을 맞았다. 시중은행 가운데 후발주자다. 다른 회사에서 모인 인재들이 새로 온 직장에서 성공해야 하다 보니 도전정신과 주인정신이 필요했다. 신한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구성원에게 신한정신을 심어 주고 이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해왔다. 2002년 금융권 최초로 설립한 직원만족센터가 대표적이다. '시공초월'이라는 사이트를 개설해 지점 단위로 CEO와 채팅도 한다. ▷이 소장=우리 기업들도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미국 포천지가 선정한 100대 기업과 비교해 보면 국내 기업의 종업원은 경영자와의 대화를 어려워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김 사장=유교문화 때문이다. CEO가 아무리 편하게 대하려고 해도 직원들이 어렵게 느낀다. 나는 점심시간에 외부행사가 없으면 직원들과 조를 짜서 식사를 한다. 자유롭게 농담도 하면서 말을 많이 시킨다.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 행장=직원들과의 대화과정에서 잘못하면 경영자가 말을 많이 하게 된다. 더 많이 들어줘야 한다. 직원이 한 마디 하는데 CEO가 대여섯 마디 하면 대화가 안된다. ▷사회=심사 결과를 보면 두 회사 직원들은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포천 100대 기업보다 높다. ▷신 행장=자부심은 주인정신과 맥이 통한다. 성과보상 체계가 중요하다. 내가 한 일에 대해 보상해 주면 조직에서의 내 역할에 자부심을 갖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리 주인정신을 강조해도 경영이 투명하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한다. 특히 인사는 투명하게 해야 자부심이 유지된다. 신한은행의 경우에는 '빽'이 안 통한다. 외부에서 청탁이 들어오면 오히려 손해를 본다. 초창기에도 외부 청탁이 들어와 역발령을 냈고 그래서 회사를 그만둔 사례도 있었다. 열심히 하면 올라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겨야 자부심도 생긴다. ▷김 사장=자부심은 성취감에서 온다. 따라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동기 부여가 중요하다. 경쟁을 유발하고 이긴 사람은 성취감을 얻고 진 사람은 다시 한번 해보겠다는 열의를 불태우는 과정에서 자부심도 생긴다. 물론 공기업의 특성상 사기업만큼 성과보상은 못 하지만 경쟁의 결과를 공정한 평가로 대신하고 있다. ▷이 소장=현장조사 결과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자부심은 높았다. 하지만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자부심이 없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일의 의미를 해석해주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업무에 대한 자부심을 소홀히 하면 안된다. ▷신 행장=개인 비전에 대해 생각해줘야 한다. '내가 여기서 열심히 하면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식의 비전을 갖고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소장=포천 100대 기업 중 2년 동안 훌륭한 일터 2위에 올랐던 기업이 있다. 직무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5.0 만점에 5.0이 나왔다. 직무에 대한 사회적 인정도가 낮은 사람들도 만족도가 높았다. 이유를 찾아봤더니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일을 인정해줬다. 청소하는 사람들에게도 "청소를 잘해서 우리가 쾌적하게 일한다,고맙다"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종업원이 회사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느냐에 대해 계속 말해줘야 한다. ▷사회=펀(fun)경영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김 사장=펀경영의 핵심은 웃음이다. 우리 회사는 '스마일 15초''웃음 바캉스' 등 스마일 운동을 많이 한다. 조직생활을 하다 보면 부서장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은 재미없는 날이다. 웃으며 아침을 시작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줘야 한다. 사회봉사활동도 펀경영의 일환이다.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재미를 느끼는 직원들이 많다. ▷신 행장=직원 스스로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고객에게도 얼굴을 찡그리게 된다. 신한은행은 '스마일 차차차'라는 아침 댄스시간이 있다. 연말에는 댄스 경진대회도 한다. 그 밖에 체력단련대회 문화예술공연 관람 등 아무리 바빠도 일에 찌든 생활에서 탈피할 수 있도록 시스템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 소장=웃음이나 문화활동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재미있는 일터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부서에 가면 웃음이 별로 없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물어 보면 재미있다고 대답한다. 구성원 간의 관계문제다. 서로에게 관심이 높기 때문이다. 높은 관심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로 나타나고 이는 구성원간의 협력으로 이어진다. ▷사회=국내 기업의 신뢰경영 수준이 선진기업들과 비교하면 어떠한지 평가해 달라. ▷이 소장=상당히 잘되고 있다. 그런데 직원들은 포천 100대 기업과 큰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떤 위치에 와 있느냐에 대해 구성원과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특히 회사가 이익을 많이 냈을 때 구성원과 공정하게 나누고 있느냐에 대해 회사는 적지 않게 노력하고 있지만 직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함께 나누는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인센티브가 정해지는 과정도 공개하지 않는다. 이런 점을 개선해야 한다. ▷신 행장=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로 계속 봉급이 올랐다. 생산성이 떨어졌는데도 무조건 올라갔다. 노조가 노력해서 올라간다는 인식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신한은행은 일부러 봉급뿐 아니라 회사 입장에서의 인건비를 표시하는 종합보상기록(Total compensation report)을 종업원에게 공개하고 있다. 정리=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 -------------------------------------------------------------- [ 훌륭한 일터의 조건 ] 훌륭한 일터(GWP·Great Work Place)는 노동전문기자 출신인 미국의 로버트 레버링 박사가 고안해낸 개념으로 '내부고객,즉 종업원이 회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는 인식에서 시작돼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레버링 박사가 말하는 훌륭한 일터는 구성원이 상사와 경영진을 신뢰(trust)하고 자기 일에 자부심(pride)을 느끼며 함께 일하는 종업원들 간에 일하는 재미(fun)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 중에서도 레버링은 신뢰를 가장 중요시한다. 그는 "종업원이 즐겁게 일하는 회사는 성과도 좋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1984년 처음 선정된 '일하기에 훌륭한 100대 기업'은 S&P500 기업들과 비교할 때 직전 10년간 수익성은 2배,주가는 3배 수준에 달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