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중국 물리학 신동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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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래 < 한국외대 명예교수·과학사 >
얼마 전 국내 신문에 '중국 물리학 신동의 몰락'이란 짤막한 기사가 났다.
17살에 중국 과학원에 들어간 영재가 퇴학당했다는 내용이었다.
궁금해 인터넷을 뒤지니 최근 몇 해 동안 중국에서 크게 화제가 된 사건임을 알겠다.
이 젊은이는 오래전부터 '중국 물리학과 과학의 희망'이라며 중국 사람들에게는 널리 알려졌던 천재 웨이융캉(魏永康ㆍ22)이다.
2살 때 한자 2000자를 읽고,140가지 물건 이름을 썼다.
후난성 출신인 이 소년은 4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가 3년 만에 6년 과정을 마쳤다.
이어 8살에 중학교에 갔고,13살에는 이미 대학생이었다.
그리고 17살에 베이징으로 올라가 과학원의 석ㆍ박사 과정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17살에 대학원 학생이 됐던 것이다.
어릴 때부터 '신동''천재' 소리만 듣던 그는 그러나 작년 8월 갑자기 대학원에서 퇴학당했다.
혼자서는 아무런 일도 처리할 수 없는 속수무책의 청년이라는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세상에는 온갖 천재와 신동이 많다.
세계제일의 인구를 가진 중국에 그런 천재나 영재는 얼마나 많을까?하지만 이만한 천재는 그리 흔치 않아서,어려서부터 웨이융캉의 이름은 중국에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그런 신동이 청년기에 들어서 그만 학교에서 퇴학까지 당하게 됐으니 큰 뉴스가 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올해 초 중국 중앙TV는 웨이융캉의 어렸을 때 선생님부터 대학의 관련 교수까지,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이모 등등 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긴 다큐멘터리를 방송했는데,이 왕년의 신동이 어떻게 22살짜리 평범한 청년으로 바뀌었는지 잘 보여준다.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의 기억으로는 이 소년은 무엇이든 보기만 하면 단박에 외웠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어머니에게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자기 아들의 비범한 재능을 알게 된 어머니는 그 뒷바라지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13살에 샹탄(湘潭)대학 물리학과에 입학하자,어머니는 대학 안에까지 따라갔고,대학당국은 모자가 사용하도록 대학 안의 방을 무상 제공했다.
그리고 이 소년 대학생은 4학년 때 기숙사로 들어갔다.
인터뷰에서 그 어머니는 아들에게 빨래 따위는 시키지 않았다면서 "일단 박사과정을 마치고 학위를 받으면 돈이 생기고,그러면 세탁쯤은 가정부를 시키면 된다"면서 "너는 그런 일은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대학 들어갔을 때 담당 교수는 두 가지 겨울방학 숙제를 그에게 내주었다.
하나는 글씨 연습을 하라는 것이었는데,그의 글씨가 초등학생 수준밖에 안 됐기 때문이다.
둘째는 중국의 4대 명저(名著)를 읽으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첫 방학이 끝나고 물었더니 어머니가 못 읽게 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교수는 회고하고 있다.
17살에 대학원 석ㆍ박사과정에 들어가면서 일은 완전히 꼬이기 시작했다.
기숙사에 살면서 치약 같은 것은 누구 것이나 갖다 쓴 다음 아무데나 놓았고,신발도 구별하지 않고 신고 다녔다.
방 청소는 하지 않아서 문을 열어두면 냄새가 밖에까지 나갈 정도였다.
'신동'으로 소문났던 아이가 퇴학 당해 집에 돌아왔다니 부모는 물론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70세가 넘은 그의 아버지는 한국전쟁에서 부상당한 상이군인으로 누워있고,그 연금으로 살림을 꾸려가는 형편이다.
일이 이쯤 되자 어머니는 그를 문 밖에도 나가지 못하게 했다.
참다 못한 아들은 한 달 이상 가출했다.
결국 경찰에 붙잡혀 집으로 돌아온 이 청년은 그 후 겨우 마음을 가다듬어 그가 졸업한 대학의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이미 지난 봄에 3일간의 입시를 치렀는데 낙방했다. 내년 대학원 입시에 다시 도전하겠다는 평범한 청년 웨이융캉의 앞날은 이제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오늘도 골목을 누비는 수많은 학원 차들을 보며, 한국의 수많은 영재들에게도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지나 않을까 쓸데없는 노파심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