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처방이 있어야 하지만 웬만한 약들은 약국에 가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가정에는 5가지 이상의 약을 갖고 있다고 한다. 지난 봄에 먹고 남은 감기약이나 두통약 등을 아무 생각없이 꺼내 먹기 일쑤고,보관상태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약의 효능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이 대충 짐작하고 복용하는 바람에 종종 약화(藥禍)사고를 불러오곤 한다. 증상마다 약 먹는 시간간격이 일정치 않고 알약이나 가루약,과립제,캡슐 등의 복용방법이 다르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이다. 또한 약은 기본적으로 화학물질이어서 온도 습도 직사광선에 민감하게 반응해 쉽게 변질된다는 것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체질이 달라 심하게 알레르기성 반응을 보이는 약은 여간 세심하지 않으면 불의의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엊그제 중국의 반관영통신 '중국신문사'는 1970년대 은막계를 주름잡았던 홍콩 액션배우 이소룡의 사인(死因)을 보도했다. 35세의 나이에 요절한 그는 두통약 과민반응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사인을 둘러싸고 그동안 여러가지 억측이 난무했기에 약물성분으로 인한 사망은 영화팬들에게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약을 잘못 써서 오히려 병을 도지게 하는 사례는 우리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병을 고쳐야 할 양약이 독약으로 둔갑되는 것이다. 약사단체가 '약 바로 알기' 캠페인을 벌이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최근에는 비즈앤이슈의 대표인 정동명씨가 '약 바로 알고 바로 쓰기(약 바로)'운동을 벌이고 있다. 약에 대한 지식수준이 너무 낮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미국에서는 약에 대한 궁금한 점이 있으면 "의사나 약사에게 질문해서 답을 얻자"는 'Get the answers'운동이 20여년 전부터 벌어지고 있으며,일본에서는 환자에게 약의 부작용 등을 꼭 질문하도록 권한다고 한다. 약은 새로운 병을 가져올 우려가 있고,많은 사람들은 병 때문이 아니라 약 탓으로 죽는다는 말이 있다. 약이 남용되는 현실에서 새겨둘 만한 얘기들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