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과 집행부의 전격 사퇴는 표면적으로는 강승규 전 수석부위원장의 뇌물 비리 연루 혐의 등 잇단 내부 비리에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는 취지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즉각 사퇴를 요구해온 내부 강경파의 정치적 압력에 굴복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겨우 명맥을 이어오던 노정 간 '사회적 대화' 분위기가 경색될 우려가 커졌다. ◆비리로 막 내린 중도정권 이수호 체제가 1년8개월 만에 붕괴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잇달아 터진 비리사건이다. 특히 노조 고위 간부인 강 전 수석부위원장의 비리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강씨는 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와 서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으로부터 "조합 정책에 잘 협조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수년간 총 8100여만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다. 이에 앞서 민노총은 이미 1월부터 연이어 터진 기아차ㆍ현대차 노조 간부의 취업 장사와 시너 등이 동원된 올초 대의원대회 폭력사태 등으로 도덕성이 땅에 떨어졌다. '추악한 민노총'이라는 여론 속에 조직 내부에서도 집행부 퇴진 압력이 갈수록 높아졌다. 온건파로 분류되는 이 전 위원장과 집행부는 중앙파와 현장파 등 강경 범좌파의 퇴진 압력에 결국 밀리고 만 것으로 분석된다. ◆강경파 급부상 이수호 체제의 '좌초'는 당장 민노총 내부 혼란과 극심한 정파 갈등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단기적으로 볼 때 내부 주도권 싸움에서 일단 승리한 공공연맹(위원장 양경규)과 금속연맹(전재환) 등 범좌파의 득세가 예상된다. 강 전 수석부위원장의 비리사건 이후에도 현 집행부는 하반기 투쟁의 중대성을 고려해 내년 1월 총사퇴 후 조기 선거를 치르기로 했었다. 그러나 반대파는 '즉각 총사퇴'를 주장했고,결국 이 같은 주장이 먹혀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민노총의 향후 운영기조도 이수호 체제가 주도해 오던 '대화 중심 투쟁방침'에서 '강경 투쟁'으로 급선회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노사정 관계 후폭풍 노정 간 대화 복원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 위원장의 퇴진은 노사정 관계 틀에 상당한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범좌파가 강경 노선을 현실로 옮길 경우 그동안 추진돼온 사회적 대화 가능성이 더욱 희박해질 수밖에 없다. 강경파측은 이 전 위원장 중심의 국민파가 추구해온 사회적 대화 노선을 '자본에 대한 투항'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경우 오는 12월 국회 처리가 예정돼 있는 비정규직법안이나 향후 논의될 '노사관계 선진화방안(로드맵)',노사정위 개편문제 등 하반기 현안 등을 둘러싼 대 정부 투쟁 양상도 한층 극렬해질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