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도시는 시청 앞 광장이 중심을 이룬다.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도 광장이다. 인구 130만명으로 독일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 뮌헨. 뮌헨의 중심도 역시 청사 앞 마리엔 광장(마리엔 플라츠)이다. 뮌헨이 자랑하는 '흰 소시지'는 어느 곳에서든지 쉽게 맛볼 수 있지만 이 광장 건너 빅투아리엔 시장으로 가는 게 맛과 낭만을 함께 즐길 수 있다. 빅투아리엔은 식품을 뜻하는 말이다. 온갖 먹거리를 파는 곳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소시지 노점상 셰머마야즈가 눈에 들어온다.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빵 가운데를 갈라 길죽한 소시지를 넣어 파는 간이 스탠드다. 관광객들의 출출한 배를 달래주는 훌륭한 요기가 되기 때문에 점심 무렵엔 긴 줄을 서야 한다. 뮌헨의 중심지에 빅투아리엔 시장이 생긴 것은 1807년 전후다. 근교의 농부들이 신선한 고기와 야채,과일을 내다 팔면서 대표적인 재래시장으로 발돋움했다. 그 한켠에 3~4평 정도의 구멍가게만한 정육점들이 다닥 다닥 붙어 있다. 200년의 역사를 가진 전통있는 소시지 시장이다. 외관만 현대화됐을 뿐 파는 제품이나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소시지만이 아니라 돼지고기,쇠고기,햄 등 다양한 제품을 팔기 때문에 정육점 거리라고 부르는 게 어울릴 것 같은 곳이다. 뮌헨의 명소가 돼 관광객들이나 인근 주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는 사람,구경하는 사람들도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 걷기 어려울 정도다. 독일 사람들은 세계적인 음식문화를 선도한 프랑스나 이탈리아와 달리 예전부터 저장하기 편리한 육가공 제품을 선호했다. 그중에서 소시지는 대표적인 간편 음식으로 독일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주로 간식으로 먹지만 맥주 한잔에 소시지를 넣은 빵으로 점심을 때우는 사람들도 많아 주식의 일부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의 소시지 소비는 놀랄 만하다. 소시지 단일 품목의 소비량은 구하기 어렵지만 소시지를 포함해 독일인이 먹어치우는 육가공 제품은 연간 250여만♥에 달한다. 1인당 30㎏ 정도다. 한국의 10배 정도나 되는 규모다. 육가공 제품을 파는 정육점 수만 해도 작년 말 현재 2만9468개에 이른다. 이 중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곳은 1만8320개,체인점 형태는 1만1148개다. 독일의 간판 음식처럼 된 소시지는 지역마다 정육점마다 맛이 다르다. 원료 고기나 향신료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다른 소시지가 나오기 때문이다. 15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그 중에서 뮌헨의 흰 소시지(바이스 부어스트)와 뉘른베르크의 손가락 소시지가 대표적이다. 흰 소시지는 뮌헨의 상징이다.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친 후 껍질을 벗겨 달작지근한 겨자를 발라 먹는다. 한국 사람들에겐 낯설지만 부드럽고 신선한 맛이 일품이어서 뮌헨의 전통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뉘른베르크 소시지는 손가락보다 조금 큰 것으로 구우면 갈색으로 변한다. 흰 소시지의 전통을 지키려는 뮌헨의 노력은 가상하다. 얼마 전 다른 지방에서 뮌헨식 흰 소시지의 제조법을 본떠 같은 이름으로 팔자 뮌헨의 정육점들이 들고 일어났다. 뮌헨식 흰 소시지를 만들려면 원료육의 50% 이상을 어린 쇠고기(Veal)로 쓰고 껍질은 돼지고기 창자를 사용해야 한다. 다른 지방에서 어린 쇠고기대신 값싼 돼지고기를 원료육으로 쓰고도 뮌헨식 흰 소시지라는 이름으로 팔자 뮌헨의 전통 정육점들이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급기야 특허 분쟁으로 비화됐다. 그만큼 흰 소시지에 대한 뮌헨시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뮌헨의 대표적인 육가공회사인 빈젠즈머의 영업담당이자 창업자의 4대손인 마커스 브랜들은 "프랑스 포도주도 특정 지역마다 고유한 이름이 붙듯 뮌헨 흰 소시지도 뮌헨에서 뮌헨식 제조법으로 만든 소시지에만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 소시지의 인기 비결은 크게 세 가지다. 좋은 육질,최상의 신선도,일관된 가공방식이다. 뮌헨에선 이렇게 만든 흰 소시지를 단 겨자에 발라 맥주를 마시면서 프레젤과 함께 먹는 게 대표적인 먹거리로 자리잡았다. 해질녘 빅투아리엔 시장에 가면 흰 소시지,프레젤,맥주를 즐겨 먹는 독일인과 관광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뮌헨=고광철 국제부 부장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