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식 < 한양대 교수·경제학 > 얼마 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초.중.고교 사회교과서의 경제관련 내용을 검토한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요지는 제7차 교육과정에 따른 공통과정 교과서의 경제 관련 내용 가운데 학생들을 오도하거나 편향된 시각을 갖게 할 표현이 많다는 것이었다. 검토 작업에 직접 참여했던 담당자로서 차후 경제교과서를 만들 때 특히 유의해야 할 점들을 지적해 두고 싶다. 우선 경제현상은 복합적이고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나치게 단순화해 서술하는 것이 문제로 지적됐다. 예컨대 초등 4학년 교과서에는 유통업의 중요성을 설명한 뒤,농수산물 유통단계가 2단계인 그림과 3단계인 그림을 대비시키면서 유통단계가 많아질수록 농산물 가격이 비싸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단순비교는 자칫 학생들로 하여금 유통단계가 많아지면 상품가격이 비싸지므로 유통단계가 많은 것은 나쁜 것,유통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란 오해를 갖게 할 우려가 있다. 또 5학년 교과서의 삽화에는 "한국 제품은 값이 싸고 질도 좋아요. 한국 상품이 역시 최고예요"라고 외국인이 말하는 장면이 있다. 물론 여기서 본래 전하고자 하는 뜻은 '질도 좋지만 가격까지 싸서 금상첨화'라는 취지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학생들에게 우리나라를 값싼 상품을 수출하는 나라로 잘못 인식하게 할 우려가 있다. 또한 가격의 의미와 의의를 오도할 수도 있다. 가격은 소비자에게는 상품을 구입하는 희생(대가)이므로 쌀수록 좋은 것으로 보이지만,기업에는 임금소득과 이윤소득의 원천인 부가가치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질 나쁜 상품은 가격이 싸며,고급 첨단제품의 값은 비싸다. 미래의 주역인 학생들에게는 값싼 상품 수출이 결코 자랑만은 아니며,외국인들이 비싼 값을 지불하면서도 사고 싶어 할 명품을 만드는 것이 진짜 자랑임을 가르쳐야 한다. 전반적으로 윤리적 규범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는 것도 문제가 된다. 인플레이션과 같은 거시경제 문제의 해결방안으로 소비자의 과소비 금지,근로자의 과도한 임금인상 자제,기업의 과도한 경쟁과 사익추구 자제 등을 주문하고 있는 게 그런 것이다. 이는 미시적으로는 법의 테두리 내에서 사익추구를 위한 경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시장경제의 기본원리와 충돌한다. 그 결과 학생들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 선수가 팀원 가운데 선발선수가 되고자,그리고 상대팀과의 시합에서 승리하고자 피나게 경쟁하는 것을 '과도한 경쟁'으로,천문학적 고액 연봉을 받는 것을 '지나친 사익추구' 행위로 오해할 수도 있다. 거시적으로는 개별 경제주체의 행위를 경제 성장,물가 안정,국제수지 개선,국가 경쟁력 향상 등 주요 거시 경제 목표 달성의 핵심 대책으로 오해할 우려도 있다. 사회교과서는 학년별로 집필진이 다르고,생산요소를 노동과 토지 및 '돈'이라고 쓰는 등 경제전문가가 집필하지 않은 듯이 보이는 원초적 오류도 보인다. 아울러 초.중.고교 과정간의 연계성도 부족하다. 사회교과서는 비록 단일 과목이지만,그 내용은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지리 역사 등 다양한 전문 부문을 망라하고 있다. 따라서 사회과목 교육과정 준비위원회 내에 각 분야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분과위원회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교과서에는 기업의 역할을 설명하는 내용이 거의 없다.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소비자에게는 좋은 상품,노동자에게는 일자리를 제공하고,정부에는 세금을 납부한다는 기업의 기본적 역할을 가르쳐야 한다. 아울러 금융경제생활을 영위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저축 투자,자금의 대여와 차입,금리,신용관리 등 금융지식을 함양할 수 있도록 보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