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장이었던 임동원 신건씨가 국정원 도청에 각각 관여한 사실이 확인됐다. 또 당시 국정원은 주요 여야 의원들뿐 아니라 자민련 민국당 등 정치권 전반에 대해 도청을 실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은 26일 DJ정부 시절인 2000년 4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국정원 국내담당 2차장을 지낸 김은성씨를 기소하면서 국정원의 도청 실태를 공개했다. 검찰에 따르면 국내 주요 인사들을 도청해온 국정원 내 국내수집팀은 모두 2개팀으로 구성됐다. 유선중계망 감청장비(R2)를 이용해 도청을 한 이 팀은 팀당 4개조 16명이 3교대로 24시간 감청에 나서 하루 10개가량의 주요 인사 통화내용을 문서화,종합처리과에 보고했다. 이후 종합처리과는 다시 7~8건을 선별해 대화체 형식으로 정리한 뒤 과학보안국(8국)장,국내담당 차장 등에게 A4 용지 반쪽 크기의 보고서로 전달했다. 검찰은 이러한 도청 과정에 임·신 전 국정원장이 어떻게든 직·간접적으로 개입했을 것이라고 판단,공모 혐의를 김 전 차장에 대한 공소장에 추가했다. 이에 따라 이 두 사람은 조만간 검찰에 소환돼 사법처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검찰은 김 전 차장이 7건의 도청에 개입하고 관련 내용을 보고받은 사실을 공소장에 명시했다. 검찰은 이미 김 전 차장에 대한 구속영장에서 국정원이 2000년 12월께 권노갑 전 민주당 최고위원의 퇴진을 주장한 민주당 소장파 의원들과 진승현 게이트 관련 인물들을 도청한 사실을 공개했었다. 이날 새롭게 드러난 도청사례는 △최규선 게이트 관련 2건의 통화내용 △자민련과 민국당 간 정책연합에 대한 대화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미국 방문에 대한 통화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안에 대한 자민련 관계자 간 대화내용 등이다. 한편 김대중 전 대통령측의 최경환 비서관은 "전직 국정원장들이 김 전 차장과 공모해 조직적으로 도청했다고 하는 것은 믿지 않는다"면서 "더 할 말은 없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은 "노무현 정권을 만든 모태정권에서 불법도청이 조직적으로 이뤄졌음이 밝혀졌다"며 "이는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이 불법도청의 원죄와 태생적 오점을 갖고 있다는 의미"라고 현 정권을 겨냥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전병헌 대변인은 "김영삼 정부 시절 미림팀과 관련된 보다 조직적이고 교활한 도청문제도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준영·정인설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