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 < 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 > 미국은 70년대 두자리 숫자의 인플레에 시달렸다. 오일 쇼크,임금 푸시 등이 물가를 끈질기게 밀어 올렸다. 걷잡을 수 없는 물가의 불길을 잡은 소방대장이 당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폴 볼커였다. 강도 높은 긴축정책을 펴자니 정치권에서 그의 인기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4년 임기 말에는 으레 백악관에서 그를 몰아낼 것이란 소문이 나돌았다. 그럴 때마다 월가의 주식시세가 곤두박질쳤다. 그만큼 금융시장에서 신망이 높으니 레이건 대통령도 해임 뜻을 굽힐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연준리에 대한 신뢰,의장의 명성이 쌓였다. 필자가 퇴임 후 그를 만나 늘 입에 물던 시가 얘기를 꺼냈더니 재임시 연봉이 12만달러에 불과해 가장 값싼 브랜드만 피웠고,금연해야 외손자를 만나게 해준다는 딸 등쌀에 줄담배를 끊었다고 술회했다. 퇴임 사유는 저(低)보수 때문이라 했다. 1987년 취임한 앨런 그린스펀은 고령을 이유로 내년 초에 사임한다. 취임 당시 인플레 불길이 되살아날 기세였기에 선제적 금리인상으로 대응했다. 그 여파로 1987년 10월의 '블랙 먼데이'라고 불리는 증시폭락이 왔고,금융긴축을 지속하자 1990~91년의 경기후퇴가 뒤따랐다. 이런 대가를 치르고서야 물가 오름세가 잡혔고,그 전투 경험 덕분에 그린스펀의 신망이 두터워지기 시작했다. 그 후 인플레 동반 없는 경제성장기,이른바 '뉴 이코노미'시대가 열리고 금리를 조금씩 지속적으로 내리며 경기후퇴에 대처할 수 있는 연준리의 즐거운 시절이 왔다. 금리인하와 넉넉한 유동성 공급에도 불구하고 미국 등 선진국 중앙은행이 물가 걱정을 덜 수 있었던 것은 IT 발달에 따라 생산성이 제고됐고,중국 등 신흥경제권으로부터 값싼 상품들이 봇물처럼 수입됐기 때문이었다. 역사상 전례가 드물 정도로 낮게 금리를 내린 그린스펀도 근래에는 거듭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부작용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연준리의 저금리 기조는 미국의 쌍둥이 적자와 맞물리며 달러화가 전세계에 넘쳐났다. 달러 발행액의 절반 이상이 해외에,그중에도 대부분이 동아시아에 몰려 쌓였다. 그 영향으로 세계 도처에 부동산 시장의 열기를 달구고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을 치솟게 만들었다. 선거와 같이 민감한 시기에 집권당에 유리하게 풀이할 수 있는 발언이 있기도 했다. 이래 저래 그린스펀의 높은 명성에 흠집이 나기 시작했다. 큰 흠집은 자산 버블 조짐 사전차단에 굼뜨다는 점이었다. 이런 혹평을 의식해서인지 연이어 0.25%포인트 금리를 올려 3.75%까지 인상했다. 퇴임 때까지는 4.25% 이상의 연준 금리가 점쳐진다. 기후조건과 공급측 변덕 같은 일시적 요인에 춤추는 곡물ㆍ원유 등을 제외한 코어 물가가 심상치 않은 꿈틀거림을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의 9월 물가가 1년 전에 비해 4.7% 올라 1991년 이래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일본은 예외지만, 유럽국가들도 사정이 비슷해 G7국가들 평균 인플레이션이 13년 이래 최고인 3.2%에 이르렀다. 유가상승이 OPEC의 책동보다 신흥경제권의 수요증대 탓이 커 향후에도 고공행진을 계속할 것이고,초고속 성장 중인 중국의 수출에 점차 '저가(低價)'의 딱지를 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속속 저금리 시대의 종언을 예고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차기 FRB 의장에 벤 버냉키 교수가 임명됐다. 그는 임명 직후 기자회견에서 전임자의 정책기조를 지속 유지할 것을 다짐함으로써 종래 다소 유화적이었던 자세를 전투적으로 바꾸었다. 소신이 분명한 학자 출신인 그는 그린스펀과 달리 인플레 목표제를 도입해 연준리의 투명성을 제고할 것이다. 아마도 그도 때로는 백악관과 충돌하기도 하고 협조하기도 하면서 장기 재임을 누릴 것이다. 한국의 중앙은행은 언제 그런 영광을 차지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