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 개발독재형 산업화 과정을 통해 80년대까지 고속압축성장 경험을 한 우리 경제에 있어, 97년의 외환위기는 모든 경제적 관행과 가치를 송두리째 뒤바꾼 충격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하루아침에 우리가 갖게 된 신앙 중 하나는, 외국자본은 유동성 위기에 빠진 우리 경제의 구세주이며 외환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던 우리 경제구조 및 기업지배구조의 불투명성을 해소시켜 줄 수 있는 백기사라는 것이다. 그 결과 외국인투자유치 실적은 곧 정부의 실력을 평가하는 척도로 간주되고 있으며,외국인투자유치를 전담하는 정부기관까지 생겼다. 한편 이렇게 국가적 노력을 들여 유치한 외국자본들의 최근 행보는 많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즉 투자펀드인 소버린사가 SK 주식 1900만주를 1750억원에 매입해 전략적인 경영권 위협을 통해 주가를 올린 뒤 투자금의 4배가 넘는 8000억원의 단기차익을 올리면서 SK의 경영여건을 뒤흔든 사례는 모두가 기억하고 있다. 또 미국계 사모펀드인 뉴브리지캐피탈은 제일은행을 매입한 뒤 1조원의 차익을 챙기고 세금은 전혀 내지 않았다. 이에 더하여 론스타는 극동건설을 1476억원에 인수한 후 극동빌딩을 1583억원에 매각, 유상감자로 650억원, 고액배당으로 240억원을 이미 회수했으며 앞으로도 약 3650억원을 추가 회수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도 유사한 한국기업들에 대한 외국 투기자본들의 기업사냥은 점차 확대되는 추세이다. 이와 같이 최근 들어 소버린 등 외국 투기자본들의 폐해가 부각되면서 외국자본이 한국경제에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며,대외충격에 매우 취약한 우리 경제에 있어 투기자본들을 포함한 외국자본에 대한 바람직한 정책방향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경제성장의 원동력은 자본축적과 그에 따른 기술력 및 총요소생산성의 증가이며, 그 바탕에 기업을 포함한 모든 경제주체들에게 혁신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합리적인 경제제도임은 교과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기본이다. 한편 국내자본 형성이 어려운 경제가 자본축적과정을 앞당길 수 있는 방안이 곧 해외자본유치이다. 서유럽국가 중 최빈국의 하나였던 아일랜드는 공격적인 외국인투자유치정책에 의해 단기간에 유럽의 최고소득국가로 부상한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가 90년대 초반 OECD 가입에 도취돼 추진했던 무원칙적인 자본시장개방은 초단기 투기자본을 대거 유입시켰고 97년 투기자본들의 대규모 유출로 경제가 통째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는 것은 우리가 직접 경험한 뼈아픈 외국자본의 위력이었다. 그러나 유동성 위기를 벗어난 상황에서도 이런 투기자본들의 기업사냥을 방치해 우리 기업들이 기술개발을 위한 투자와 경영혁신에 전력하지 못하고, 경영권 방어를 위한 자본게임과 순이익을 초과하는 투기자본들의 고율배당 요구를 충족시키기에 급급하고 있는 현실은 명백한 시장실패이다. 정부 역할의 기본은 시장실패의 교정이다. 과거 유동성의 수급불일치에 의한 자본시장의 실패를 교정하기 위해 정부가 발벗고 외자유치에 나섰듯이 외국투기자본에 의해 초래된 시장실패 역시 정부는 당연히 교정해야 한다. 최근 투기자본들의 탈세에 대한 국세청의 세금추징은 매우 적절한 조치였다. 하지만 이러한 투기자본들이 초래하는 시장실패의 교정 노력들이 기술혁신에 기여하고 있는 외국인투자에 대해서까지 부정적인 정책신호를 보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다. 즉 기술혁신에 기여하는 외국인투자에 대한 인센티브정책과 자본시장을 왜곡하는 투기자본들에 대한 규제를 명백하게 차별화해 외국투기자본들에 강력한 정책 시그널을 보내는 것은 국내 부동산투기 억제를 위한 최근의 정책 시그널 못지않게 시급한 사안이다. 외국자본에 대한 정책에서도 경제원칙에 충실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