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인터뷰] '비서의 길' 열어준 남편에 思夫曲 담은 추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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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에 누운 아빠(남편을 부르는 호칭)에게는 세 가지 소원이 있었다.
첫째와 둘째는 제자 두 명의 박사논문이 빨리 완성되는 것이고 셋째는 '착한 딸 소담이가 짝을 찾아 가정을 이루고 사위와 행복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보는 것인데…'라며 아빠는 말꼬리를 흐리곤 했다.
이 모든 것이 지금 나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제자의 박사논문은 지금 평안학사 남편 영전에 놓여 있다.
전성희 이사가 최근 남편을 기리기 위해 펴낸 추모집 '님은 꽃으로 웃고 바람으로 스치시네' 중 한 구절이다.
추모집은 고인의 병상일기와 유고,제자들의 추모글,가족들의 '우리아빠' 이야기로 채워졌다.
추모집은 전 이사의 애틋한 남편 사랑을 표현한 '망부가'로 가득하다.
생일상과 60세 환갑을 제대로 챙겨 주지 못한 일,미국 하와이에서 박사 학위 논문을 통과한 뒤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해 박사 가운을 입어 보지 못한 일 등 절절이 남편을 사모하는 글들로 넘쳐난다.
또 고인이 된 남편과 강원도 문막에 조그만 땅을 구입,집을 짓고 채소를 가꾸던 시절의 이야기도 소개했다.
"어느 일요일 아침 정원에 있던 아빠가 나를 부르면서 말했다.
'여보야,여기 참 좋다! 나는 엄마 있는 포천 산소보다 여기에 묻히고 싶어.내 죽어서도 문막의 흙 갖고 놀 수 있게….' 무심코 한 말이었지만 무슨 낌새를 느꼈을까? 아프다는 생각을 꿈에도 하지 못했던 건강하던 때의 일이다.
그런데 이것이 유언이 될 줄이야! 아빠가 누워 있는 '평안학사' 곁을 우리 가족은 주말마다 맴돌면서 아빠를 만난다"는 추모집의 한 구절을 다시 읽으며 전 이사는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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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만주출생
△1958년 인천여자중학교 졸업
△1961년 인천여자고등학교 졸업
△1965년 이화여대 약학대 졸업
△1965년 인성여자중고교 교사
△1969년 미국 에드워드 D.술탄 근무
△1979년 대상산업 비서직 입사
△1994년 대성계전 차장대우
△2001년 대성그룹 이사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