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언니 비서' '비서계의 대모'로 불리는 전성희 대성그룹 이사.1979년부터 27년째 김영대 대성그룹 회장(63)을 모시고 있는 국내 최고령 비서다. 목소리만 들어서는 62세라는 나이가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낭랑하다.


최근에는 지난해 작고한 남편(심재룡 전 서울대 철학과 교수)의 1주기를 맞아 애틋한 남편사랑을 담은 추모집을 냈다.


전 이사는 "비서는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계발을 통해 모시는 분의 '어시스턴트'이자 '비즈니스 파트너'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관훈동 대성그룹 사옥 7층에서 전 이사를 만났다.


전 이사가 비서직에 입문한 것은 우연이다.


지난 79년 미국 유학을 마친 남편과 함께 귀국했을 때 남편의 대학친구였던 김 회장(당시 상무)이 "미혼 비서를 두었는데 모두 1년 정도하고 그만두더라.어디 오래 근무할 아줌마 없느냐"며 남편에게 추천을 부탁한 게 계기가 됐다.


"당시 남편은 시간강사였는데 봉급이 적어 네 식구 생활형편이 넉넉지 않았죠.남편은 대뜸 김 회장에게 '내 마누라를 써보라'며 즉석에서 추천했어요. 그래서 세브란스 병원 약사모집 면접을 포기하고 대성산업에 들어가게 됐어요."


전 이사는 그로부터 지금까지 27년째 김 회장을 모시고 있다.


"이제는 눈빛만 봐도 회장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김 회장은 저를 '미세스 심'(전 이사의 사내 별칭)이라고 부르면서 내가 회장직을 70세까지 할텐데 그때까지 같이 하자고 자주 말합니다. 그때마다 저는 창피해서 더 이상 못할 것 같다고 대답합니다."


그녀는 '미세스 심'으로 불리는 이유에 대해 자신의 일화를 공개했다.


"남편이 심씨여서 미세스 심으로 불리고 있어요. 한번은 오래 전 인천에 살고 계시는 어머니가 서울에 오셨는데 딸을 보고 싶다며 회사에 전화를 했어요. 전성희 바꿔달라고 했는데 회사직원이 그런 사람 없다고 해서(회사 내에서 미세스 심으로 불리고 있어) 어머니가 그냥 돌아간 적이 있었다"며 자신은 아직도 전 이사보다는 미세스 심으로 불리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그녀는 비서생활을 하면서 외국기업과의 비즈니스 협상을 성사시키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89년 독일의 헨켈이 국내 합작선을 찾고 있을 때 였습니다.


대성산업 대표로 독일에 가서 교육을 받고 조사보고서를 작성해 협상을 성공시켰어요.


그렇게 해서 생긴 회사가 지금의 대성C&S입니다.


이 때문에 김 회장은 저를 창사 멤버라고 부릅니다."


전 이사는 김 회장의 끈질긴 집념을 보여주는 일화도 살짝 공개했다.


"그러니까 90년이었지요. 당시 한 직원이 50억원을 횡령해 미국으로 도주했는데 회사에서는 사실상 찾는 것을 포기했습니다.그런데 김 회장이 직접 미국에 가서 9개월간 곳곳을 뒤져 잡아온 일이 있습니다. 미국과 범죄인 인도조약도 맺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진 것이어서 당시에 화제가 됐다"며 은근히 김 회장을 치켜세웠다.


전 이사는 임직원 중 사내 미화담당(청소) 아줌마에 이어 두 번째로 빨리 출근한다.


매일 아침 6시30분 회사에 도착,김 회장의 하루 일정을 정리하고 7시30분부터 1시간 동안 김 회장과 함께 외국어 공부를 한다.


프랑스어를 4년간 했고 지금은 중국어(중급)를 배우고 있다.


비서하면 먼저 연상되는 커피 심부름에 대해 "커피 타는 것을 싫어하면 안됩니다. 커피를 타는 것은 집에 온 손님을 정성껏 대접하는 그 이상입니다. 커피를 나르는 것도 회사의 이미지를 나르는 것과 같다고 봐야 한다"며 자기 하기 나름에 달렸다고 전 이사는 강조했다.


"저는 한번 찾아온 손님에게는 커피에 프림과 설탕을 얼마나 넣는지 일일이 메모합니다. 이 손님이 다시 오면 알아서 커피를 내가는데 손님들도 감탄한다"며 자신의 노하우를 귀띔했다.


"비서는 보통 1~2년 정도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며 "비서는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노력해서 모시는 분이 편안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비즈니스 파트너'가 돼야 한다"고 후배들에게 조언도 잊지 않았다.


이어 "누가 비서를 하더라도 비서일 이외 한 가지 일을 더 배워(가령 외국어를 배운다든지) 전문지식으로 무장하면 비서직도 오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들어도 안 들은 척,알아도 모른 척,봐도 못 본 척하고 인사 관련 이야기는 절대 회장님과 말하지 않는 불문율을 지키고 있다"며 비서의 철칙도 소개했다.


그녀는 이어 "자신은 회장님의 명함을 고교친구,대학친구,,산업계 인사 등으로 일일이 분류해 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하고 있어 회장님이 누구를 찾으면 곧바로 확인이 가능하다"며 자신만의 노하우도 말했다.


남편 이야기가 나오자 전 이사는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


"남편은 참 건강했는데….그날도 건강검진 결과를 보러 갔는데 그만….13개월 투병생활을 하다가 돌아가셨어요. 남편은 현재 강원도 문막의 평안학사에 묻혀 있어요.


이곳은 남편과 함께 노후를 보내려고 마련했습니다.


당시 남편과 자주 찾곤 했는데.남편도 이곳이 너무 좋다며 여기서 살고 싶다고 자주 말했어요." 최근에 남편 1주기를 맞아 추모집을 냈다며 책을 소개했다.


전 이사는 독립운동을 하던 아버지(전호인:全湖人)로 인해 만주에서 태어나 8·15 광복 이후 인천에 정착했다.


전 이사의 남편은 초등학교 친구다.


"인천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남편은 반장,저는 부반장이었어요. 이후 헤어졌다가 이화여대 약대 2학년 때 남편이 기숙사로 찾아와 줄곧 만났죠."


69년에 결혼해 1남(우람·30) 1녀(소담·34)를 뒀다.


그녀는 "아빠(남편을 부르는 호칭)가 살아계셨을 때 비서생활을 65세까지 하기로 했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할지 생각해 봐야겠다"고 말했다.


"남편이 살아 계실 때 강원도 문막에 땅을 사 집(평안학사)을 지어 자주 갔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글=김후진 기자 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