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 대학생 한 명이 따분한 강의를 빼먹고 기숙사 방에 처박혀 있었다. '인성론'을 쓴 철학자 흄에 흠뻑 빠져들었기 때문이었다. 훗날 기득권과 싸우는 막역한 동지가 될줄도 모른 채. 책을 읽던 청년은 바로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자유무역 신봉자로 자산이 아닌 국민소득의 증가가 부(富)라는 철학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는 사회 다수를 차지하는 빈민 노동자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경제발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정부의 개입을 반대하며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는 시장이 경제를 성장시키는 도구(국부론 4편)라고 했으니 당시 세간의 평이 좋을 리 없었다. '물정 모르는 몽유병 환자' '자유방임주의자' 등 부정 일색이었다. 하지만 200여년이 흐른 현대의 시각으로 봐도 통할 수 있는 대단히 혁신적인 생각임에는 틀림없었다. '불황에서 나라를 건진 경제학자들의 투쟁'(와카타베 마사즈미 지음,홍성민 옮김,국일증권경제연구소)은 18세기 이후의 경제사를 다뤘지만 과거를 통해 현재를 말하는 형식이 독특한 신간이다. 맨더빌에서 리카도·케인스를 거쳐 로빈스에 이르는 당대 학자들이 불황과 난관에 어떻게 정책을 제시하고 대응했는가를 밝힘으로써 오늘날 문제 해결의 지름길을 제시하고 있다. 금(金)본위 제도로의 복귀를 놓고 망설이는 처칠에게 심각한 디플레이션을 경고했던 케인스.즉시 복귀를 주장하는 재무 관료에게 맞서 실업 증대와 임금 인하를 둘러싼 사회논쟁 가능성을 어필했지만 설득에 실패했다. 이날의 회동은 결국 1926년 5월 영국 최초의 총파업이라는 탄광 노동자들의 공장 폐쇄로 이어진다. 또 대공황 직후 하버드에서 '불황은 단비와 같고 금융 완화 정책은 모르핀 같은 진통제'라고 해 학생들을 놀라게 한 슘페터, 경제학자 중의 경제학자라는 평을 듣는 리카도의 이야기도 눈길을 붙잡는다. 귀족의 품격을 상징했던 튤립의 뿌리가 황소 30마리 값에 달했던 1630년대 네덜란드의 투기 광풍,'납에서 은을 추출했다' '오이에서 햇빛을 뽑아냈다'는 영국 회사의 주가가 급등했던 1700년대,천연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는 20년 전 GE의 버블이 던져주는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게 해준다. 256쪽,1만원. 김홍조 편집위원 kiru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