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갤러리] 애옥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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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삿짐 정리를 한다
결혼 십오년 만에 처음
하나 둘 제물처럼 불러들인
세간들 사이로
청태처럼 묵은 때 내려
닦고 문지르고
칼로 긁어봐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설레고 때로는 울먹이며
우리 함께 걸어온 날들
어이,닦아도 안 되는 것들은
이참에 그냥 싹 버려버리지
한마디 툭 내뱉고 돌아보는데
낯설게 흔들리는 아내의 눈길
울컥,뜨겁다
-고증식 '애옥살이'전문
손때 묻은 세간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살아온 세월이 고스란히 담긴 추억이고 역사다.
그것들을 장만했을 때의 그 싱싱한 충만감.이제 새것에 밀려 존재의 이유가 희미해 졌지만 고집스럽게 집 어딘가엔 버티고 있다.
그렇게 쌓여가는 낡은 가구나 옷들을 버릴까 하다가 늘 다시 내려놓곤 하는 따뜻한 어리석음.그런 어리석음이 쌓여 인생이 되는 것인가.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