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자유구역청(특구청) 내 한 직원의 자리가 며칠이나 비어 있어 무슨 사고를 당했느냐고 물었더니 시청으로 원대 복귀했다는 거예요. 며칠 뒤 처음 보는 직원이 눈에 띄어 누구냐고 했더니 시에서 파견 나왔다고 하더군요. 아무리 청장에게 인사권이 없다고 하지만 명색이 상관인데 아무 말도 없이 지자체 인사에 따라 들락날락합니다. 이런 상황에 청장이 무슨 일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겠습니까?" 얼마 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경제자유구역의 운영 실태와 개선방안 세미나'에서 만난 모 특구청장의 하소연이다.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인천과 부산·진해 광양 등 3곳에 경제자유구역(특구)이 지정된 지 3년. 지정 초기 한국 정부의 개방 청사진에 매료된 외국 기업들은 앞다투어 투자의향서에 사인했다. 하지만 수도권 규제완화 등 각종 제도 개선이 뒤따르지 못한 데다 특구청의 업무체계마저 엉망이다 보니 투자의향서 가운데 구체적인 투자로 결실을 맺은 것은 10% 선에 불과한 실정이다. 출범 당시엔 '원스톱 행정 서비스'를 내걸었지만 지자체와 경제자유구역청의 중첩 구조로 인해 공염불이 되고 있다. 외국기업 직원들은 지자체와 경제자유구역청을 일일이 거쳐야 하는 불편한 인·허가 행정을 두고 '원-모어 스톱 서비스'라고 비웃고 있다. 이 지경이 된 데는 현 정부가 지역 균형발전에 몰두한 나머지 인천 등 경제특구의 제도 개선에 신경을 덜 쓴 탓도 크다고 봐야 한다. 특구청 인력의 80% 이상이 해당 지자체 공무원인 것도 문제다. "인력 수준도 그렇지만 특구청에 파견 근무를 나가면 아무래도 본청(시청) 근무에 비해 인사 고과에 불이익을 당한다는 피해의식이 팽배하기 때문에 특구청으로 발령받는 날부터 돌아갈 궁리만 하는 게 현실입니다." 특구청장은 이렇게 푸념만 할 뿐이다. 예산을 지자체로부터 지원받는 청장 입장에선 시청이나 시의회 눈치를 보느라 제도 개선을 요구할 엄두도 못 낸다. 정부 지원도 알량하다. 도로 상·하수도 등 도시 기반시설에 대한 정부의 지원 비율은 18% 수준에 불과하다. 외국 경제특구들은 정부 지원으로 '선 기반시설 조성,후 유치' 전략을 펴고 있는 데 반해 한국 특구들은 '선 유치 후 조성'을 고집하다 보니 중국 등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을 수 없다. 수도로부터의 거리나 규모 면에서 인천경제특구와 닮은꼴인 네덜란드 알미어 시(市)를 보자. 알미어시 매립 작업은 전액 정부의 자금 지원으로 이뤄졌다. 외국 기업이 알미어 시에서 법인 인가를 받고 공장을 설립하려면 시 공무원만 만나면 된다. 경제자유구역의 제도 개선은 특정 지역의 외자 유치만을 위해 시급한 게 아니다. '행정과 관료 시스템이 글로벌 경쟁시대를 맞은 한국 경제의 걸림돌'이라는 지탄을 받지 않기 위해서도 중앙정부와 지자체 관료들 스스로가 특구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