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4618m의 예라산(業拉山) 고개를 넘어서자 가파른 내리막 길.그냥 내리막이 아니라 급회전이 꼬리를 무는 꼬불꼬불 내리막 길이다. 산 아래 저 멀리에는 계단식 다랑이밭과 티베트 마을이 정겹게 있지만 차창 바로 옆의 낭떠러지는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티베트 동부의 창두(昌都)에서 라싸로 가는 길에 만난 '누장산(怒江山) 72굽이 길'이다. 쓰촨성(四川省) 청두(成都)에서 시짱(西藏·티베트)의 라싸를 연결하는 촨짱궁루(川藏公路)는 이처럼 험하기로 유명하다. 해발 5000m 안팎의 고개와 험산(險山),천 길 낭떠러지와 계곡이 즐비하다. 하지만 세상 일이란 명(明)과 암(暗)이 함께 있는 것.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길이 험한 만큼 절경도 많다. 특히 1954년 개통한 촨짱궁루의 남로와 북로가 만나는 창두에서 라싸에 이르는 길은 대협곡과 드넓은 초원,설산에서 흘러내리는 빙하와 토사,원시림 등이 천변만화(千變萬化)의 조화(造化)를 빚어낸다. '누장산 72굽이 길'을 내려와 다랑이밭이 있는 마을에 이르자 또다른 복병이 기다린다. 차만 보면 신기해서 달려드는 마을 아이들.탐험대 차량 4대가 뽀얀 먼지를 날리며 잇달아 나타나자 아이들은 달리는 차의 손잡이를 잡으려고 불쑥불쑥 뛰어든다. 위험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차에 손자국을 내고,두드린다. 사탕이라도 나눠주고 싶지만 아이들의 드잡이를 당해내기 어려워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다. 가파른 산비탈에서 풀을 뜯는 양떼를 뒤로 한 채 마을을 빠져 나오면 '누장(怒江) 대협곡'이다. 골짜기가 너무 좁아 산 위를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지키고 있는 누장대교를 건너면 또다시 눈앞에 펼쳐지는 신기한 풍경.조금 전까지 탁류였던 강에 옥빛 물이 합류하는 현장이다. 산봉우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각기 흘러온 황토빛 탁류와 옥빛 맑은 물은 여기서 합쳐져 함께 흘러간다. 대협곡과 평원을 달려온 탐험대를 기다리는 것은 울창한 숲이다. 창두에서 라싸로 향하는 길에 하룻밤을 보낸 보미(波密)는 숲속의 도시다. 크지 않은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눈덮인 산과 울창한 나무들,산 허리를 감고 있는 운무가 신비감을 자아낸다. 길 왼편에는 창두에서 시작해 얄룽창포대협곡으로 합류하는 린즈니아허(林芝尼亞河)가 울창한 숲 사이로 흘러 천혜의 경관을 만들어낸다. '티베트의 스위스'라고 불리는 '강샹(崗鄕)자연보호구'다. 보미에서 린즈(林芝),바이(八一)까지 이어지는 318번 국도는 이런 풍경의 연속이다. 티베트 고원에 이런 풍경이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강샹자연보호구 안의 도로는 포장 구간도 있지만 흙길이 더 많다. 하지만 조만간 이 흙길도 포장될 모양이다. 약 120km에 걸친 구간에서 도로공사가 한창이다. 티베트의 다른 지역과 달리 비가 많이 오기 때문에 도로 유실이 잦고 라싸와 칭하이(靑海),쓰촨,윈난(雲南)을 연결하는 길이어서 도로 정비가 더욱 필요하다고 한다. 길이 고도를 점차 높여가면서 린즈니아허는 협곡으로 바뀐다. 울창한 수림(樹林)과 협곡을 흐르는 맑은 물,하지만 여차하면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질 수 있는 위험한 구간이다. 차가 퉁마이대교에 이르렀을 즈음 비마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다. 퉁마이대교는 퉁마이협곡에 걸려 있는 철교로 쓰촨과 윈난에서 라싸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다. 그래서 대교 양편에서 군인들이 통행 차량과 사람을 일일이 검문하고 통제한다. 사진 촬영도 일절 금지다. 다리와 다리 건너편의 길은 차량 1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여서 차량들은 길게 줄을 섰다가 군인들의 통제에 따라 다리를 건너야 한다. 한 시간여를 기다린 끝에 다리를 건넜다. 그러나 오른쪽은 절벽,왼쪽은 까마득한 낭떠러지여서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도로마저 질퍽하고 미끄러워서 맞은편 차량과 교행할 때는 아슬아슬하다. 낭떠러지 쪽으로 비켜서야 하는 맞은편 차량은 노련한 화물차 운전사라도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렇게 1km쯤 갔을까. 선두 차량이 멈춰 서고,또 다시 차량들이 긴 행렬을 만든다. 내려서 확인해 보니 야크를 싣고 반대편에서 오던 트럭이 반쯤 넘어져 있고,야크 몇 마리는 목에 밧줄이 묶인 채 땅에 떨어져 버둥거리고 있다. 야크 한 마리는 쇠파이프 난간에 배를 걸친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또 한 마리는 밧줄이 목을 조여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트럭 운전사와 몇 명의 남자들이 30분 이상 낑낑댄 끝에 야크들은 목숨을 건졌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곧 도살될 야크들이지만 그래도 일단 살아난 것을 보니 절로 박수가 나온다. 아슬아슬한 협곡의 험로를 마침내 벗어나 루랑(魯郞)을 지나자 써지라산의 울창한 수림이 기다린다. 산 전체를 쭉쭉 뻗은 전나무들이 빼곡히 덮고 있다. 산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관경대(觀景臺)가 여러 곳 있지만 아쉽게도 짙은 운무 때문에 볼 수 없다. 이 때문에 해발 4700m의 써지라산 고개로 오르는 길이 마치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관문 같다. 써지라산을 다 내려오니 임업도시로 유명한 린즈와 현대화한 도시 바이다. 여기서 라싸로 향하는 길 왼편에는 니양허(尼洋河)가 옥빛 자태를 뽐내며 동행한다. 설산에서 녹아내린 물이 니양허에 모여 흐르는 데다 티베트의 맑고 푸른 하늘이 비쳐 강물은 그대로 하늘색이다. 주변 과수원에서 막 따낸 사과와 배 등을 길가에 내놓고 파는 농민들까지 가을 풍경의 한 자리를 차지한다. 촨짱궁루의 마지막 산고개인 미라산(米拉山·4973m)을 넘어서자 이제 라싸는 코앞이다. 울창하던 삼림은 사라지고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다. 라싸강의 아름다운 풍경에 푹 빠졌던 눈을 들어 보니 라싸의 상징 '포탈라궁'이 저 멀리서 손짓한다. 라싸(티베트)=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