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관계의 개선을 추구할 때 간과할 수 없는 게 중국이라는 변수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중국 최고지도자로는 4년여 만에 북한을 방문한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행보가 주목을 끈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지난달 30일 사흘간의 일정을 마친 후 주석의 이번 방북은 북ㆍ중 관계가 과거 6ㆍ25전쟁으로 다져진 혈맹 단계에서 이젠 실리적인 경제협력 확대로 발전되고 있음을 확인시켰다. 후 주석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회담을 끝내고 맨먼저 참석한 행사가 북ㆍ중 경제기술협력 협정 체결식이라는 데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협약의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중국이 북한의 자원과 인프라 개발에 대한 보장을 받았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후 주석이 김 위원장에게 제안하고 동의를 이끌어낸 양국 관계발전을 위한 4개항의 내용도 경협에 무게가 실렸다는 인상을 준다. 지난해 4월 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후 주석이 내놓은 4개항 제안과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번 제안에서는 경협 강화 부분이 네 번째에서 세 번째 항으로 옮겨졌다. 후 주석은 또 김 위원장이 마련한 만찬 석상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해 중국 개혁개방 이후의 성과를 시시콜콜히 소개함으로써 북한의 개혁개방을 공개적으로 압박하기도 했다. 특히 후 주석이 김 위원장으로부터 "예정대로 11월 초 5차 6자회담에 참가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이 또한 꽃다발을 든 시민들로부터 열렬히 환영을 받는 후 주석의 모습과 오버래핑되면서 중국이 북한에 대해 지니는 정치적 영향력의 크기를 실감케 했다. 후 주석의 방북 행보는 북한이 중국의 정치 및 경제적 영향권에 빠른 속도로 빨려들어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벌써부터 남북통일이 되더라도 남쪽은 북쪽 자원을 중국 상인을 통해 비싸게 사들여야 할 것이라든가,북한이 중국의 또 다른 성(省)으로 편입될 것이라는 기우마저 나돈다. 한발짝 더 가까워진 북ㆍ중 관계 변화는 한반도를 끌어안아야 할 운명을 지닌 우리에게 지혜로운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