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 대형화,웰빙 붐과 명품 선호현상 확산 등 일선 소비시장의 구조 변화가 가속화하면서 지표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는 것과 달리 서민들의 체감 경기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전국 주요 상권마다 들어선 대형 할인점이 슈퍼마켓과 구멍가게 등 소규모 상점은 물론 세탁소 안경점 등 동네 상권을 빠른 속도로 대체하고 있고 고급 브랜드를 싼 값에 파는 대규모 패션 아울렛이 곳곳에 들어서면서 재래 의류상가에도 찬바람이 계속되고 있다.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상위 소득계층의 소비 증가가 영세 자영업자 등 하위 계층으로 퍼져 나가는 예전의 '소비 사슬'이 완전히 붕괴됐다는 얘기다.


구조적 한계에 부딪친 영세 자영업자들에 대한 구조조정 유도와 체계적인 회생 지원대책 마련이 시급해졌다는 지적이다.



< 할인점 확장에 동네상권 갈수록 냉각 >


할인점들의 영업망이 전국 주요 지역으로 확대되면서 구조조정으로 변신하지 못한 대부분의 영세 자영업소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할인점과 업종이 같은 슈퍼마켓과 구멍가게는 물론이고 할인점에 입주한 세탁소 안경점 등이 기존 동네 업소들을 빠르게 밀어내고 있다.


서울 은평구의 한 할인점에 입주한 '클린세탁' 천우선 사장은 "할인점에 들르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곳에 수선을 맡긴다"며 "하반기 들어 매출이 5%씩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곳으로부터 20m 떨어진 도로변에서 10년 이상 세탁업을 해 온 김춘옥 메이텍빨래방 사장은 "셀프 세탁을 위해 들여놓은 자동 세탁기를 돌려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날 정도"라고 말했고 길가 안경점인 안경마트의 김시환 사장은 "구매력이 있는 사람들은 전부 할인점에 입주한 업소로 가고 과거의 단골 손님들은 안경테가 부러져도 접착제로 붙여서 그냥 쓰고 다닐 정도"라고 말했다.




< 재래시장 "경기 회복은 남의 얘기" 한숨 >


남대문 시장과 동대문 패션타운 등 재래시장 상인들은 "경기 회복세가 무슨 얘기냐"며 한숨만 내쉬고 있다.


요즘 결혼 시즌을 맞아 백화점 패션매장과 대형 아울렛 등은 한창 특수를 누리고 있지만 재래시장 상인들에게는 남의 얘기일 뿐이다.


포목 상가가 밀집해 있는 서울 종로5가 광장시장은 건물 내 10% 가까운 상점이 공실 상태로 남아 있다.


남대문 시장에서 혼수 용품을 주로 판매하는 박영규 중앙상가 2층 대표는 "요즘 혼수 용품은 할인점이나 백화점에서 구입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상품에 따라 많게는 작년에 비해 50% 정도 매출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남대문 의류상가에 15년째 비닐 봉지를 대고 있는 이완식 한남포장 대표는 "200장들이 대형 비닐봉지의 경우 하루 10묶음 정도 나가는 게 고작"이라며 "소매 경기가 되살아나고 있다지만 작년 이맘 때보다 조금도 나아진 게 없다"고 말했다.


대형 비닐봉지는 남대문 패션타운 도매상이나 지방 원정 상인들에게 필수적인 소모품.봉지 판매량은 '시장 경기의 바로미터'로 통한다.


< 패밀리레스토랑에 밀려 식당가 찬바람 >


패밀리레스토랑 업계는 매출이 꾸준히 늘어나면서 경기 회복을 실감하고 있다.


국내 1위 패밀리레스토랑인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의 경우 31일 전남 순천에 70호점을 여는 등 체인망을 빠르게 넓혀나가고 있다.


내년에는 30개 점포를 더 열어 100호점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빕스의 경우 2003년 15개 점포에서 지난해에는 22개,올해 10월 말 현재 34개로 늘어나는 등 역시 호황을 누리고 있다.


반면 동네 식당은 물론 직장 주변의 '밥집'들도 경기회복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 광화문의 한식당 주인 이모씨(40)는 "찌개나 고기류가 주 메뉴인 까닭에 여름보다 매출이 조금 나아졌을 뿐 경기가 좋아진 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제과점업계도 대형 체인점의 시장석권 현상이 심화되면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동네 빵집 주인들이 뭉쳐 대형 제과체인과 이동통신 회사의 '편파적인 멤버십 할인'을 불공정 거래 행위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한 사건은 영세 자영업자의 생존이 벼랑끝에 몰렸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이지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소득 양극화와 함께 웰빙 붐 등의 영향으로 상위 소득 계층의 소비 증가가 하위 소득 계층으로 퍼져나가는 이른바 '소비 사슬'이 무너졌다"며 "자영업소들이 기업형 대형업소들에 대응할 구조조정을 서두르지 않는 한 부자들의 소비가 특정 업태에만 집중되고 아래 계층의 소득 증가와 소비 확대로 이어지는 확산 경로 단절현상도 심화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생활경제부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