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밤섬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서울 온 첫해/마포 강둑에 서면 거기/꿈꾸는 밤섬 하나 떠 있었다/춥고 허기지고 고향이 그리울 때마다/한 알 밤으로 까먹고 싶은/밤섬에서는/서울애들이 발가벗고 놀고 있었다/한강에 하나 둘 다리가 생겨나고/뜨겁고 긴 어느 날/나는 밤섬에 갔다/그러나 거기 꿈꾸는 밤섬은 이미 없었다…'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다.
모든 유기체가 그렇듯 도시 역시 끊임없이 꿈틀거린다.
뭔가 해체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가 하면 어느 순간 소멸됐던 것들을 되살려낸다.
자연이든 인공적인 것이든 도시를 이루는 모든 요소들은 눈에 보이는지 여부에 상관없이 서로 이어져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서울도 마찬가지다.
한 나라의 도읍이 된 뒤 600여년 동안 쉬지 않고 변신을 계속했다.
마포 종점(전차) 시절 군용 비행기만 뜨고 내리던 섬 여의도는 빌딩숲으로 변했고,빨래하고 물장구치던 청계천은 복개된 지 40여년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난초와 영지의 섬 난지도는 쓰레기산을 거쳐 생태공원으로 거듭났다.
서강대교 아래 있는 밤섬(栗島) 또한 변화무쌍한 유기체로서의 서울을 보여준다.
밤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밤섬이란 이름이 붙은 이 섬은 위의 시에서 보듯 1960년대 중반까지 사람이 살던 곳이다.
섬 사람들은 배를 만들거나 고치는 일과 약초재배 고기잡이 등을 했다.
그러나 68년 여의도 개발로 섬은 폭파되고 주민들은 떠났다.
섬은 그러나 사람이 떠난 뒤에도 살아 움직였다.
팔당댐 방류량이 초당 5000t이 넘으면 물에 잠기지만 그 결과 생물의 종은 더욱 다양해지고 폭파 후 줄었던 땅은 늘어났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서 천연기념물인 원앙을 비롯 텃새인 흰빰검둥오리 꼬마물떼새 등이 자리잡고,겨울이면 수많은 철새가 찾아온다.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출입을 통제하고 여의도 한강시민공원 수영장 뒷편에 철새조망대만 설치했던 서울시가 서강대교 교각 남북에 웹카메라를 설치,밤섬의 24시를 인터넷으로 실시간 전송한다는 소식이다.
섬 속 새와 풀들의 움직임을 속속들이 볼 수 있을 테니 좋긴 한데 그럼 새들의 자유는?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