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사가 한국시장에서 윈도를 철수할 수 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MS의 공정거래법 위반혐의(윈도 운영체제에 미디어플레이어, 메신저 등 여러 기능을 결합한 이른바 끼워팔기와 관련)에 대해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의 판결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진 상황에서였다. 이는 곧 한국 공정위에 대한 MS의 위협 내지 협박으로 받아들여졌다. 공정위에 대해 MS의 엄포에 흔들리지 말라는 응원성(?) 주문들이 나왔는가 하면 네티즌들 사이에선 MS에 대한 분노의 얘기들이 쏟아졌다. 공정위가 이런 성원을 받은 것도 드문 일이다. MS에 대한 국내 정서가 어떤지를 충분히 짐작케 한다. MS가 인심을 못얻어 그런 것인지,외국의 강자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반응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MS는 과연 한국을 협박한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MS가 바보가 아니라면 이런 미묘한 시점에 불리한 여론을 자극할 게 너무도 뻔한,그 결과 공정위의 선택 여지를 더욱 좁게 만들 수 있는 그런 얘기를 할 수 없다. 하도 궁금해서 MS가 한국에서 윈도를 철수할 수 있다는 문제의 내용이 담긴 10-Q 문서, 즉 미 증권거래소에 제출된 분기 보고서를 읽어 봤다. 솔직히 말해 향후 벌어질지 모를 이런저런 가능성들이 기술적으로 언급돼 있다는 느낌밖에 안들었다. 그것도 공정위가 미국이나 유럽연합 경쟁당국보다 더 강한 조치(예컨대 윈도의 관련코드 삭제나 한국시장만을 위한 윈도의 재설계 요구 등)를 MS에 부과했을 때를 가정해서였다. 각종 사업상 위험요소를 명시해야 하는 미 증권법에 따른 보고서란 점에서도 한국에 대한 협박으로 간주하기엔 무리였다. 만일 MS가 한국에서 윈도를 철수할 가능성이 현실로 바뀐다면 MS의 전 세계 매출액에서 한국 비중이 얼마인지를 떠나 그 자체가 MS에는 손실이다. 또 그것은 향후 중국 등 아시아 시장에도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 한마디로 이런 보고서를 가지고 과잉반응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보다는 오히려 우리 쪽에서 여러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냉정히 손익계산을 해 봐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명분도 살리고 실리도 잃지 않는 그런 해법이 있다면 그게 최고다. 여기서 명분은 반(反)MS 정서가 개입됐다는 오해를 받지 않고 공정경쟁 의지를 과시하는 것이다. 공정위가 제재를 한다면 어디까지나 불공정행위에 대한 제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 인식을 확고히 심어줄 필요가 있다. 동시에 실리를 잃어서도 안된다. 내 자식에게 무슨 문제가 있어도 내가 아닌 남이 뭐라고 하면 기분이 나쁜 법이다. 그게 인지상정이다. 더구나 MS는 싫든 좋든 미국을 상징하는 IT기업이다. 공정위가 앞장서서 미국이나 EU 경쟁당국보다 더 강한 제재 조치를 내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란 얘기다. 속은 후련할지 모르겠지만 그게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사실 국가마다 경쟁법이 다르다 보니 경쟁 이슈는 곧잘 통상이나 산업측면과도 얽히고 있다. 통상에는 어떤 변수가 될지, IT제조업 등 산업 전반에는 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게다가 모든 것이 결합되는 이른바 컨버전스(convergence)로 대변되는 IT 흐름도 생각해 볼 점이다. 명분과 실리를 조화시킨 공정위 해법이 나올지 궁금하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