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황당한 제안서가 날아들었다. 정체불명의 한 중국 회사가 미국 석유회사 엑슨모빌을 사겠다고 오퍼를 냈다. 엑슨모빌은 고유가를 등에 업고 몸값이 오를 대로 오른 회사로 1일 현재 시가총액이 세계 석유업계 최고가인 3556억달러나 된다. 제안서를 낸 '킹 윈 로렐(King Win Laurel)'이라는 중국계 뉴질랜드 법인은 엑슨모빌 현재 주가에 24%의 프리미엄까지 얹어 주당 70달러씩 총 4500억달러(469조원)를 지불하겠다고 밝혔다. 엑슨모빌은 "킹 윈 로렐이라는 회사가 그만한 자금력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며 묵살했고 미국 증권가도 "만우절이라고 착각했을 것"(캐봇머니 매니지먼트 로버트 루츠 CEO)이라며 코웃음 쳤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 언론들은 이 회사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최근 IBM PC부문과 영국 자동차업체인 랜드로버 등 전통 있는 외국 회사들이 중국 자본에 넘어간 사례가 잇따르고 있어 '혹시'하며 추적에 나섰다. 로이터통신은 SEC 제안서에 나와 있는 주소를 따라가 베이징 외곽 한 아파트의 14층에 위치한 킹 윈 로렐의 임대 사무실을 찾아냈다. 사장은 장 시우펑이란 이름의 20대 중반 청년이라는 사실도 알아냈다. 중국 일간지 제일경제일보는 장 사장과 전화 인터뷰에 성공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엑슨모빌 인수 제안에 대해 "사고 싶다는 의향을 밝힌 것뿐이지 공식적으로 절차에 들어가겠다는 뜻이 아니다"고 한 발 물러났다. 자금 동원 방법에 대해서도 "지금으로서는 밝힐 만한 내용이 없다"고 꼬리를 내렸다. 장 시우펑의 킹 윈 로렐은 엑슨모빌 인수제안 이전에도 비슷한 전과를 가지고 있다. 지난해 봄에는 뉴질랜드에서 피자헛,KFC,스타벅스 사업권을 가지고 있는 최대 프랜차이즈 업체 '레스토랑 브랜드'를 사겠다고 했고 10월에는 호주 최대 통신 업체 텔스타를 600억호주달러(46조원)에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두 경우 모두 해당 업체로부터 '장난 편지'로 치부됐다. 장 사장은 그러나 여전히 세계 굴지의 기업을 인수하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엑슨모빌도 호주나 뉴질랜드 기업 제안 때처럼 흐지부지 되는 것 아니냐"는 제일경제일보측 질문에 장 사장은 "그것은 미국 당국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 수 더 떠 "법인 설립 때부터 우리 목적은 엑슨모빌 인수였다"며 "속도는 느리지만 서서히 인수를 추진 중"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