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방폐장 게임 끝, 승복 미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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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세 < 연세대 교수·경제학 >
방폐장 유치 경쟁은 게임이다.
산업자원부,지방자치단체,해당 지역주민,환경단체가 참가하는 게임이다.
모든 게임에는 룰(rule)이 있다.
민주적 절차에 따라 투표한 결과 찬성 주민의 비율이 가장 높은 지자체에 방폐장을 세운다는 게 그것이다.
그렇게 선정된 지역에 정부는 약속한 특별지원금과 폐기물 반입 수수료를 지급하고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이전,양성자 가속기 설치 등 추가 지원책을 충실히 이행한다는 것이다.
유권자 10명 중 9명이 찬성표를 던진 천년고도(千年古都) 경주가 최종 승자로 확정됐다.
게임의 모든 참가자들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한판승부였다.
탈락한 세 지자체와 주민들도 선전했다.
반대 단체들도 최선을 다했다.
환경연합은 기형아 사진 배포를 포함해 방폐장의 위험을 적극 홍보했고 민주노총도 GM대우 군산공장 노조를 통해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제2의 부안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게임이란 소모적 과열경쟁과 적자생존의 논리가 지배하게 마련이다.
그러한 게임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있다.
바로 승복의 미덕이다.
일단 게임의 룰에 동의하고 참가했으면 이기든 지든 결과에 따르고 협력해야 한다.
방폐장 부지 선정은 끝났다.
게임의 룰에 동의하고 참가했으나 자신이 패배하면 결과에 불복해 게임을 추잡하게 만드는 사례를 우리는 자주 봐왔다.
각종 선거의 후보 경선에 참가했다가 자기가 지면 신당을 만든다든지 무소속으로라도 출마하는 사례는 너무 흔해 화제도 안 된다.
왜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까? 떼쓰면 통하기 때문이다.
불복하고 극한 투쟁을 계속하면 '꿩 대신 닭'이라도 얻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그런 조짐이 없지 않다.
경주시를 비롯 해당지역 방폐장 반대 단체와 일부 환경운동 단체들은 무효소송 방침을 밝히는 등 지속적 반대투쟁을 천명하고 있다.
더 이상 민주주의의 기본을 무시하는 이런 행위는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이번 방폐장 유치는 모두가 기피하는 혐오시설 유치 지역을 선정하는 모델을 제시하고 주민 다수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적 민주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보완해야 할 점도 많다.
무엇보다도 지원규모를 결정할 때부터 경쟁원리를 적용해 경제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경주와 군산의 작년예산이 각각 5611억원,4112억원이었음을 상기하면 특별지원금 3000억원,폐기물 반입 수수료 85억원,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이전까지 제시한 것은 다소 지나치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더구나 1300억원을 들여 양성자가속기가 설치되면 첨단산업기술 기반이 조성돼 1조5000억원의 경제적 효과에다 인구 유입도 기대할 수 있다.
이런 측면을 감안한 낙관적 추정에 따르면 방폐장 유치에 따른 경제적 효과가 4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국고를 풀어 과연 그렇게까지 직접적으로 '당근'을 줄 필요가 있었는지 의구심이 들게 하는 통계다.
물론 정부의 심정은 이해가 된다.
방폐장 선정이 20여년을 끌어오면서 장관 3명 경질과 주민 폭력 사태까지 빚었음을 생각하면 정부는 해당 지역이 거부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력적인 당근을 제공하고라도 하루빨리 해결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원자력발전소,쓰레기처리장,군 사격훈련장 등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혐오시설이나 터널 건설,간척사업 등 대형 국책사업을 추진할 때마다 경제성을 무시한 엄청난 보상을 해줄 수는 없다. 응분의 보상은 받아야 마땅하나 향후 지자체들이 국가시설 유치를 '봉'으로 여길까 우려된다. 지자체 간 경쟁이 예상될 경우에는 지원규모 자체에 대해 경매입찰 시스템을 도입하고 그 다음 주민투표를 통해 결정할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되면 경제효율성을 담보하면서 동시에 다수 주민의 동의를 얻는 민주성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