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혁 < 황화상사 사장 shhwang@hwangnco.com > 1970년대 초 런던 지점에 부임했을 때 가장 내 마음을 끌었던 것은 박물관이었다. 런던은 박물관의 도시 같았다. 세계 구석구석으로부터 구해온 진기하고 귀중한 인류의 역사적 유물들과 자연의 신비를 헤아릴 수 없는 박물관에 보기 좋고 이해하기 쉽게 전시해 놓아 휴일에 시간이 날 때마다 발길은 그쪽으로 향했었다. 언젠가 조그만 과학 박물관을 찾은 적이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발판 위에 눈높이로 놓여 있는 축구공 하나가 눈에 들어 왔다. "박물관에 웬 축구공" 하며 지나치려다 그 공의 뒷면에 붙어 있는 조그만 동판을 보았다. 거기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지구를 축구공의 크기라고 보면 지구 표면의 가장 높은 산 꼭대기와 가장 깊은 바다의 바닥 사이 거리는 우표 딱지의 두께 정도다." 그 축구공에는 우표 딱지 하나가 붙어 있었다. 축구공에 붙은 우표 딱지는 늘 내 머릿속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한번 계산을 해서 그 비유가 그들이 좋아하는 조크인지,숫자로도 맞아떨어지는 이야기인지 따져 봐야겠다고 늘 생각은 했지만 삼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저 생각만 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 머리에 지금까지 박혀 있는 그 깊은 충격이다. 인간의 삶을 보호하고 있는 공간의 왜소함,그 속에서 마치 하느님이나 된 듯 거들먹거리는 인간들,그 먼지 같은 존재들이 먼지 같다고 부르는 더 왜소한 존재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먼지 같은 존재들의 아름다움,그 생명의 존귀함,그 먼지들의 생성과 소멸의 신비함을 생각하는 것이다. 지난 여름 인도네시아에서 해일로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을 때는 그래도 충격이 덜했다. 준비가 덜 된 평화로운 마을에 갑자기 천재지변이 닥쳐 아까운 목숨들을 잃었구나 했었다. 그러나 늘 때만 되면 찾아오던 친숙한 허리케인이,세계에서 가장 풍요롭고 삶의 보호장치가 잘 되어 있는 미국에서 수만명의 목숨과 함께 가장 아름다운 도시 하나를 소멸시킨 일을 보고서 자연이 내릴 수 있는,그 크기를 잴 수 없는 재앙의 힘 앞에 엎드려 그저 자비를 기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그것이 시작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받을 재앙은 점점 더 다양해지고 혹독해지리라는 것이다. 생태계의 변화,대형 질병,농작물 흉작과 삶을 위협하는 재앙들이 상상할 수 없는 크기로 확대되리라는 것이다. 모든 재앙은 자연이 균형을 잃었을 때 찾아온다. 그것은 인간의 탐욕,과소비와 과식이 원인이 될 수 있다. 인간은 가끔 자신의 왜소함을 잊고 산다. 적당한 중력으로 우리 발을 땅에 고정시키고,적당한 압력으로 우리 몸을 지탱시키며,적당한 양의 햇빛,공기와 물을 주어 우리의 생명을 존속시키는 것은 자연이다. 오히려 먼지 같은 인간들이 그 자연의 주인인 것처럼 착각함으로써 생태계는 파괴되고,자연의 저항이 시작되는 것이다. 환경을 지키고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것은 살려고 들어온 인간들의 첫 번째 의무다. 외경하고 감사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