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들어 소비 행태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간 소득 격차가 벌어지면서 아주 비싼 상품이나 저렴한 상품이 아니면 팔리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예외가 있을 수 있다. 시장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얼마든지 예외를 찾을 수 있다. 가전제품의 경우,최고급 양문형 냉장고와 초저가 일반 냉장고보다 중급 양문형 냉장고가 더 많이 팔린다. 외식업체에서도 최고급 레스토랑이나 저렴한 식당보다 패밀리 레스토랑이 더 인기를 끌고 있다. 명품 아니면 동대문시장 물건이 지배할 것 같은 핸드백 시장에서도 MCM 같은 중고급 브랜드가 선전하고 있다. 화장품 시장에서도 최고급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아베다'나 '비오템'은 무슨 이유에선지 계속 성장하고 있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선 신형 그랜저가 오랫동안 부동의 1위였던 쏘나타보다 더 많이 팔리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매스티지란 이처럼 시장에는 최고급도 아니고 대중적이지도 않은 영역에서 입지를 넓혀가는 많은 브랜드들이 있다. 이런 브랜드를 매스티지(Masstige)라고 한다. 매스티지는 대중을 의미하는 'Mass'와 최고급을 뜻하는 'Prestige'의 합성어다. 다시 말해 대중적인 최고급품이라는 조금 이율배반적 혹은 모순적인 개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매스티지는 다른 말로 '매스 프리미엄(Mass Premium)' 혹은 '구매할 만한 사치품(Affordable Luxury)''새로운 사치품(New Luxury)'으로 불리기도 한다. 어떤 표현을 쓰든,매스티지는 대중이 조금 무리하면 살 수 있는 수준의 고급 제품을 의미한다. 때문에 '샤넬''티파니'와 같은 전통적인 사치품은 매스티지에 속하지 않는다. ◆매스티지,어떤 특성이 있나 매스티지 브랜드들은 각기 다른 가치를 제공하지만,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독특함을 강조하는 브랜드들이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아베다'는 천연 성분만을 사용함으로써 자연주의 고객에게 다가가고 있다. 애플의 '아이팟'은 기능 대비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하면서도 독특한 디자인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매스티지라고 하기에는 조금 더 비싸지만 '뱅앤드올룹슨'의 오디오나 비디오 기기들도 차별화된 디자인으로 소유하는 사람에게 자부심을 전달한다. 또 고객의 취향을 철저하게 파악해서 대응하는 브랜드도 있다. 핸드백으로 유명한 '코치'는 '루이비통'이나 '페라가모' 같은 강한 브랜드 이미지를 갖고 있지 못했다. 이 회사는 자사의 디자인 철학을 고집하는 도도한 상품 전략에서 벗어나 철저하게 고객이 원하는 것을 제공함으로써 점점 더 높은 가격을 받는 데 성공했다. 코치가 고객 조사에 투입하는 비용은 업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한편 전통적인 고정관념이 무너지는 곳에서 매스티지가 나오기도 한다. 예컨대 과거에는 부유층은 대형차,저소득층은 소형차를 산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그러나 라이프 스타일이 다양화되면서 차의 크기와 소득의 관련성은 줄어들고 있다. 이런 트렌드 속에서 BMW는 기존 3시리즈보다 더 작은 크기의 1시리즈,또 벤츠는 A시리즈라는 소형차를 내놓았다. 국내 패스트푸드 시장은 건강에 대한 염려를 반영해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패스트푸드는 저렴하다는 고정관념을 깨면서 등장한 크라제 버거에 대한 반응은 긍정적이다. 미국에서도 가격보다 건강에 초점을 맞춘 파네라 샌드위치는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매스티지,누가 사나 매스티지의 핵심 고객층은 중산층이다. 중산층의 소득이 계속 증가하고,중국 등 신흥 공업국 덕에 주요 공산품의 가격은 내려가면서 생겨난 소비 여력이 매스티지의 구매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는 소득 양극화로 중산층이 오히려 얇아지고 있어,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매스티지가 차지할 수 있는 입지는 좁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매스티지를 촉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소비의 개인화에도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매스티지가 성장하기 힘들다고 보기는 어렵다. 과거 중산층의 소비는 주로 가족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결혼 연령이 늦어지거나 아예 독신으로 사는 사람이 늘어나고,자녀 수도 줄어들면서 소비의 초점이 점점 더 자기 자신에게 맞춰지고 있다. 따라서 매스티지는 일시적인 유행이 아닌 상당 기간 계속될 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 김재문 연구위원 jmkim@lger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