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순씨'와 '소년…'에 비친 시대상 흘러간 시간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은 첫사랑을 떠올릴 때의 감정과 비슷한 모양이다. 특히 나이 많은 상대를 향해 품었던 첫사랑은 그 웃자란 감정에서 파생하는 설렘이 마냥 흐뭇하게 기억된다. 시절이 아무리 '수상'했다 하더라도 다시 돌아가고만 싶은 어린 시절처럼 말이다. 최근 선보인 영화 두 편에서 그런 공통점이 발견된다. 3일 개봉한 '사랑해 말순씨'와 11일 개봉할 '소년, 천국에 가다'는 한국 사회의 격동기였던 1980년대를 배경으로 연상녀에게 품었던 첫사랑의 감정을 소중하게 다뤘다. 두 작품 모두 박흥식 감독과 윤태용 감독이 저마다 오랜 세월 가슴에 품었던 아이템. 켜켜이 쌓인 세월과 함께 상처와 환희가 많이 퇴색되기 마련이지만 첫사랑과 80년대는 감독에게는 한번쯤 되뇌어보고픈 소재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더구나 절대 이뤄질 수 없는 허무맹랑한 첫사랑일 경우 그것은 80년대가 가진, 너무 아프기에 오히려 '희극적인' 시대성과 맥을 같이 하게 된다. 그러니 영화로서는 매력적인 소재가 된다. '사랑해 말순씨'는 그런 점에서 빼어나다. 고통을 "아프다"고 소리질러 표현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너무 아파 소리조차 지르지 못할 수 있다. 아예 체념한 듯한 웃음이 흘러나올 수도 있고, 언급을 하는 것조차 고통스러울 수 있다. 박흥식 감독은 후자의 방법을 택해 80년대와 첫사랑을 조명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날부터 시작된 영화는 전두환 대통령이 취임하던 날까지의 실로 '살 떨리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에는 그런 고통이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폭압적인 교육과 죽어라 일해야 했던 근로자들, 광주사태와 절망적인 시대 분위기가 마치 남의 일인 양 잇따라 언급되는 통에 슬퍼할 겨를이 없다. 주인공 소년에게는 그보다 옆방에 세든 간호보조사 누나에 대한 연정이 훨씬 중요하다. 피부가 뽀얗고 예쁜 그 누나를 생각하며 몽정을 하고 야한 꿈을 꾸는 것이 현재 절체절명의 화두다. 소년이 그런 과정을 거쳐 성숙해지듯, 그가 살아가는 시대 역시 고통 속에서 희망을 꿈꾼다. 박 감독은 실제 당시 민초들의 삶이 그러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하다못해 대사 속에 반영할 수 있었을 시대상조차 짧은 한두 마디로 처리했다. 대신 당시의 풍경을 마치 풍속도를 그리듯 섬세하게 화면에 담아냈다. 백 마디 말보다 한 장의 사진이 효과적일 때가 있듯 관객은 80년대를 옮겨놓은 화면만 보고도 절로 회한에 빠지게 된다. '소년, 천국에 가다'는 한층 판타지적인 요소를 가미했다. 그 자신 미혼모의 아들인 13세 소년이 30대의 또다른 미혼모에게 한눈에 반해 사랑을 '마구' 키워나간다. 다분히 발칙한 설정. 그런데 소년에게 아빠가 없는 것은 아빠가 데모와 고문 끝에 정신병원에 입원한 때문인 것으로 묘사된다. 소년이 또다른 미혼모에게 강력한 연정을 품는 것은 암울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동병상련인 것. 미혼모의 아들에게 아버지가 돼줘야겠다는 소년의 생각 역시 그렇다. 이 영화는 '사랑해 말순씨'에 비해서는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부분이 거의 없다. 윤태용 감독은 첫사랑의 감정과 그것을 현실화하려는 소년의 눈물겨운 노력을 과대포장하는 것으로 시대의 아픔까지 아우르려했다. 꿈이 아닌 이상 현실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간호보조사 누나도 안되는데 미혼모라니. 그러나 "나도 전두환 싫어해요", "이런 세상 살아 모할라꼬?"라는 두 마디 대사에 반영된 시대상은 소년이 하루에 1년씩 늙어가는 선택에 당위성을 준다. 더불어 풍진세상에서 둥글둥글 살아가느니 차라리 사랑에 몸을 던지라고 외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pret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