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업계에는 '제일기획 출신'이란 꼬리표를 단 최고경영자(CEO)급 광고인들이 맹활약하고 있다.
제일기획은 1972년 창립 후 올해로 공채 기수만 30기를 뽑았다.
풍부한 '인력 풀(pool)'에다 부동의 1위 광고기업이 갖고 있는 업무 노하우,사내 도제식 교육 등 독특한 기업문화가 합쳐져 업계에 두터운 '제일기획 인맥'을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광고업계는 광고주와의 관계,광고수주 등 업계 특성을 감안할 때 두터운 인맥이 그 어느 분야보다 중요한 곳으로 꼽힌다.
현재 업계의 내로라하는 제일기획 출신 스타급 CEO로는 최창희 크리에이티브 사장을 들 수 있다.
최 사장은 1986년 제일기획 광고국장,삼성자동차 마케팅담당 임원 등을 거쳐 지난 99년 외국계 광고회사인 TBWA 사장에 발탁됐다.
최 사장은 홍익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한 뒤 아트 디렉터로 활동했다.
기획(AE) 분야가 아닌 아트 디렉터 출신이 대형 광고회사 CEO로 올라선 것도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2004년 4월 "경영자보다는 광고인으로 남고 싶다"며 TBWA 사장직을 박차고 나와 화제를 낳았다.
문애란 웰콤 대표와 외국계 광고회사 리앤디디비(Lee & DDB)의 이용찬 사장도 '제일기획 광고사관학교'를 빛내는 스타급 광고인이다.
문 대표는 지난 75년 제일기획 공채 2기 카피라이터로 입사,5년 만에 사표를 내고 당시 독립광고 대행사였던 웰콤으로 자리를 옮겼다.
'미인은 잠꾸러기''못생겨도 맛은 좋아''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등 독특한 광고 카피 실력을 뽐내며 승승장구해 CEO 자리를 꿰찬 입지전적 여성 광고인으로 통한다.
91년 경력사원으로 제일기획에 합류한 이용찬 사장은 독특한 업무태도 등 기행으로 사내에서 '괴짜'로 불렸던 인물.'PT(프레젠테이션)의 귀재'란 명성에 걸맞게 경쟁 PT에선 져본 적이 없는 실력파이기도 하다.
이 사장은 97년 독립해 광고 대행사를 차렸다.
이 광고회사는 곧바로 세계적인 광고그룹 DDB월드와이드에 흡수합병됐다.
합병 당시 DDB 측에 자신의 이름 첫 자(Lee)를 붙일 것을 요구해 관철시킨 것은 이 사장의 고집과 자존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신세계 광고를 주로 맡고 있는 베컴의 신창규 대표는 제일기획 창립 멤버였고,강철중 TBWA 대표도 공채 8기로 2000년 TBWA에 스카우트됐다가 CEO로 승진 발탁된 인물이다.
미디어랩 회사인 캐럿코리아의 오명환 대표,와이컴의 오용탁 대표,컴온21의 이승목 대표 등도 제일기획의 울타리를 벗어나 광고회사 CEO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광고회사 임원의 경우에도 제일기획 출신은 부지기수다.
대표적으로 신재환 휘닉스컴 부사장,이재철 LG애드 부사장,오세진 JWT 부사장,오영곤 서울광고기획 부사장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밖에 MBC애드컴,한컴,코래드,한국O&M 등 대부분 광고회사에서 제일기획 출신 광고인들이 중역급 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광고업계는 '0 0 출신'이란 점을 내세워 특별한 유대관계를 맺는 경우는 드물다.
"제일기획 사단이 업계를 쥐고 흔든다"는 말도 우스갯소리에 불과하다.
광고주에 따라 이직률이 높고 공존보다는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만 하는 '정글의 논리'가 우세한 곳이 광고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 한직장에 몸담았던 사람끼리 '느슨한' 형태의 유대감은 존재하게 마련이다.
지난해 광고인들이 주축이 돼 설립한 AIA(Advertising Is All·광고인협회)를 그 사례로 들 수 있다.
AIA는 최창희 사장이 초대 회장을 맡고 있으며 문애란 대표,이용찬 사장 등 제일기획 출신이 주축이 돼 설립됐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