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업체 "일본수출 포기할 판"..원ㆍ엔 환율 890원대 급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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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ㆍ엔 환율이 가파르게 하락하면서 일본 수출 비중이 높은 중소업체에 비상이 걸렸다. 연초 100엔당 1008원하던 환율이 890원까지 떨어지자 환차손으로 채산성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규모가 작은 영세업체는 엔화결제 비중이 높기 때문에 환율 하락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중소기업의 지난해 대일 수출 규모는 95억6764만달러로 중국(188억7596만달러) 미국(128억8724만달러) 아세안(115억491만달러)에 이어 네 번째 규모다. 업종별로는 전기ㆍ전자,기계,화학ㆍ플라스틱,철강금속,금형ㆍ공구 등의 비중이 높다. 이들 업종의 중소업체는 철강 텅스텐 등 원자재 가격 상승과 중국 저가품 공세에 환율 하락까지 겹친 '삼중고'에 신음하고 있다.
◆적자 수출에 수출 포기까지
경남에 있는 체인제조업체인 D공업은 각종 체인제품을 연간 15억~20억원어치 일본에 수출한다. 전체 수출 가운데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달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일본 바이어와 진행 중이던 수출 계약 협상을 포기하고 말았다. 견적을 낼 당시에 비해 원ㆍ엔 환율이 10% 이상 떨어지고 원자재인 카본스틸 가격이 15% 이상 올라갔으나 이를 수출단가에 조금도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수출할 수는 없어 환율 하락분을 가격단가에 반영해주지 않는 계약은 포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밀부품주조업체인 L사는 일반 산업용 부품 생산부터 항공기 엔진 부품 등 다양한 주조물을 생산한다. 전체 매출액 가운데 40%가량이 수출이고 이 중 절반 이상을 일본에 수출한다. 회사측은 "전액 엔화로 결제계약을 맺는데 오랜 기간에 걸쳐 체결하기 때문에 환율 변화를 그때그때 반영하기 힘들다"며 "중국 업체가 저가 제품을 쏟아내며 가격 경쟁력을 잃고 있는 상황에서 환율 하락까지 겹쳐 기존 품목들로는 설 자리가 없다"고 설명했다.
원주에 있는 B기계는 대당 1억~2억원의 유리가공기계를 생산,일본에 수출하고 있다. 이 회사 손모 사장은 "매년 손익분기점을 겨우 넘기는 수준에서 10여대를 수출해 왔으나 환율 하락과 자재가격 상승으로 최근에는 대당 수백만원씩 손해를 보면서 내보내고 있다"며 "거래선 유지를 위해 적자수출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환위험에 사실상 무방비
대부분의 중소업체는 원ㆍ엔 환율 하락세에 대해 수출선 다변화나 원가절감 등만 되뇌이고 있을 뿐 이렇다할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다이아몬드공구업체인 A업체는 일본 수출 비중이 50~60%에 달하지만 환율 변동에 대한 리스크 관리를 못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환관리 부서를 따로 두거나 환관리 보험 등에 들 만한 형편이 안된다"며 "일본 시장에 중국산 저가품이 판치고 있는 상황에서 환율 하락분을 제품단가에 반영하기도 힘들어 그대로 손실로 떠안고 있다"고 밝혔다.
기협중앙회 관계자는 "중소수출기업의 엔화결제 규모가 연간 50억달러(약 5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며 "중소수출업체의 70~80%가 환리스크 관리를 못하고 있기 때문에 원ㆍ엔 환율 하락세가 지속될 경우 올해만 수천억원대의 환손실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