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택 < 중앙대 교수·경제학 >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주변국과 물의를 빚고 있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이번엔 내각의 핵심포스트를 보수파 인사들로 채웠다. 정부에 대한 일본국민의 지지도도 상승하고 있다. 일본 정부에 자신감을 되찾아 준 것은 경제의 부활이다. 재작년부터 시작된 경기회복이 올해까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잃어버린 10년'으로 지칭되는 1990년대 이후 단행된 느리지만 꾸준한 거북이형 시장개혁의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노동시장,금융시장,기업,공공부문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전방위적으로 이뤄진 개혁의 골자는 시장기능 강화와 경쟁의 도입이다. 고이즈미에게 압승을 가져다 준 지난 선거를 촉발시킨 우정사업 민영화법안이야말로 개혁이 절정에 달했음을 의미한다. 우리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이에 못지않은 공공부문 개혁은 작년 4월 시행된 모든 국립대학의 법인화이다. 대학개혁을 촉발시킨 직접적 원인은 출생률 저하로 인한 입학인원 감소이지만 더 큰 목적은 대학의 국제경쟁력 강화이다. 101개에 이르는 국립대학을 통폐합해 89개로 줄이고,법인화를 통해 예산의 독립성과 운용의 자율성을 부여했다. 정부지원금 축소에도 불구,법인화 이후 국립대학들은 경영 효율화로 연간 1조원의 흑자를 냈다. 법인화에 대한 대학구성원의 설문조사 결과도 찬성이 67%로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됐다. 국립대학 법인화에 대한 논의는 우리나라에서도 1987년부터 시작됐다. 그러다 올 들어 특성화를 위한 대학혁신방안의 하나로 급물살을 타고 있다. 현재와 같이 국립대학이 국가기관의 일부로 남아 있으면 예산은 물론 인사 행정 등 대학운용에서 대학이 가질 수 있는 자율권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국립대학 법인화는 재정지원은 지속하되,대학에 대학운영의 실질적 자율권을 보장하고 그 결과에 대해선 대학 스스로 책임지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립대학들은 이러한 법인화 원칙에는 동의하나,법인화로 인한 미래의 재정지원 감소를 우려해 아직은 시기상조라며 반대하고 있다. 한편 소수이기는 하지만 일부에서는 유럽식 사회모형을 추구하고 있는 현 정부에서 미국식 대학모형을 추구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나라도 거의 모든 대학이 국립대학인 유럽식으로 가야 된다고 한다. 그러나 유럽식 대학모형은 경쟁력이 없는 것으로 판명났다. 매년 전 세계 대학순위를 발표하는 중국 상하이교통대학 순위에 따르면 세계 20대 대학 중 18개가 미국대학이고 유럽은 하나 밖에 없다.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분석에 의하면,미국 대학이 앞서 가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미국에서는 정부가 재정지원 이외에는 대학교육에 거의 간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 다른 이유는 대학 간의 경쟁에 있다. 미국 대학들은 학생,교수,연구자금 등 대학에 필요한 자원 획득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립대학 법인화는 신속히 시행돼야 한다. 그러나 일본과 같이 모든 국립대학을 동시에 법인화할 수는 없다. 우리의 사회 경제적 환경에서 50여개에 이르는 국립대학들이 단기간 내에 모두 홀로 서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건이 형성된 일부 대학부터 순차적으로 법인화는 조속히 시행돼야 한다. 국립대학 법인화는 대학의 자율성 부여와 성과에 대한 책임부여이다. 그런데 이런 대원칙을 내세우는 정부에서도 이 원칙과 상반된 정책이 적지 않다. 국립대학 법인화와 함께 통폐합을 통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가 새로운 국립대학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본고사 금지,고교등급제 불가,기부금입학 금지의 3불(不) 원칙 역시 대학 자율을 강조하는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정책이다. 정부는 국립대학 법인화와 같은 개혁조치와 더불어 자기모순적인 대학정책에 대해서는 전향적인 방향전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