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현 <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 > 얘기 하나. 한 사람이 들판을 거닐고 있다가 산을 더 가까이서 보려고 산 쪽으로 위치를 옮겼다. 얼마 후 한 경찰관이 나타나서 말한다. 당신이 위치를 옮긴 후 그 곳에 길이 났고 길 건너는 것이 금지되는 법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길을 건넌 상태가 계속되고 있으니 다시 길 건너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얘기 둘.한 사람이 어느 경찰관과 상의를 한 후 허락을 얻고 길을 건넜다. 그런데 다른 경찰관이 나타나 길 건너는 것이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벌칙이 무어냐고 묻자 벌칙조항은 없는 상태인데 잠깐만 있으라더니 지금 벌칙조항이 만들어졌는데 다시 길 건너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금산법 24조 위반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길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일단 건너는 '행위'가 있고 나면 길을 건넌 '상태'가 지속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뒤늦게 법을 통과시켜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는 아무리 보아도 소급입법이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이 그렇다. 법도 생기기 전에 이미 삼성전자 주식을 매입하고 시간이 상당히 지난 1997년에 와서 금산법에 금지 조항을 하나 신설하고 나더니 아무 얘기도 없었다. 법을 집행하는 행정부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므로 승인돼 잘 넘어간 것으로 간주할 만했다. 그러다가 시민단체 하나가 목소리를 높이자 2005년에 와서 새삼 5% 이상 주식을 보유한 '상태'는 불법이고 이를 다 팔도록 강제하는 법 개정을 서두르고 있다. 길도 없던 시절에 길을 건넌 행위를 뒤늦게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도 어색하지만 길을 건넌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면서 이를 해소하라고 강제하는 것은 부진정소급입법으로서 소급입법이 아니니 다시 길 건너로 되돌아가라고 하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당혹스럽다. 삼성카드의 경우는 좀 다르다. 공정위의 승인을 받아 중앙일보와의 계열분리를 하면서 취득한 주식이고 뒤늦게 카드와 캐피탈이 합병하면서 지분초과가 발생했다. 문제는 처벌조항이 없었다는 것이다. 처벌조항이 없는 상태에서 행위가 발생했는데 이를 뒤늦게 처벌조항을 삽입해 처벌하겠다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금산분리문제도 그렇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국가들에 있어서 금융과 산업의 분리를 얘기할 때 금융은 은행산업에 국한된 얘기이다. 그런데 우리는 은행은 물론 카드나 보험 같은 제 2금융권까지를 모두 금융 분야로 간주한 후 엄격한 금산분리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금산분리에 상당히 엄격한 미국에서 최고의 기업 GE는 비은행 금융회사인 GE캐피탈을 소유하고 있고 GE캐피털은 금융업을 영위하면서 유럽에 은행도 몇 개 자회사로 가지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신경 안 쓰는 비은행 금융분야까지를 모두 금산분리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금산법 조항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혹시 개정을 하거나 예외규정을 포함한 추가입법이 필요한 조항이 아닌지 검토해보아야 할 때이다. 학창시절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체벌을 가할 때 사랑의 매가 있었는가 하면,감정적인 매도 있었다는 것을 누구나 느낄 것이다. 벌 받는 학생이 스스로 잘못했음을 뉘우치는 상태에서 적절한 수준의 체벌을 가하고 몸과 마음의 고통을 통해 잘못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경우가 사랑의 매일 것이다. 삼성전자 주식은 현 상태로 두고 삼성카드가 보유한 에버랜드 주식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제한하도록 하는 정부개정안은 합리적이고 수긍할만한 체벌로 보인다. 그러나 두 주식 모두 5% 초과분을 5년 이내에 다 팔아야 된다는 열린우리당 안은 아무리 보아도 정도가 심하다. 진정소급이니 부진정소급이니, 부칙에 따라 승인을 받은 것으로 보느니 안 보느니 하는 법리 논쟁을 벌이기 이전에, 매를 때리는 선생님이 감정의 매를 대는 것은 아닌지, 매 맞는 학생이나 이를 지켜보는 제3자가 과연 수긍할 만한 수준의 체벌인지 다시 한번 돌이켜 보아야 할 때이다.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