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의학과 대체요법을 도입,한방과 양방을 혼합해 치료를 하는 '퓨전 한의원'이 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신규 배출 한의사가 급증해 내부 경쟁이 격화되자 경제력 있는 의료소비층을 흡수하기 위해 첨단 의료기법을 도입하면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서울 역삼동 맑은참진한의원은 스파와 레이저를 갖춰 놓고 여드름 아토피성 피부염 기미 등 각종 피부 질환을 치료하고 있다. 피부관리실을 방불케 하는 각 치료실에는 여느 한의원과 달리 20∼30대 젊은 여성환자들로 꽉 차 있다. 치료실에선 한의사가 피부과 전문의들이 쓰는 화학요법제에 감초,상백피 등 생약추출물을 배합해 만든 약제로 노폐물과 굳은 살을 벗겨내고 있다. 8000만원대 스파가 설치된 방에서는 미세 수증기를 피부에 침투시켜 들뜬 피부를 가라앉히는 하이드로 테라피도 이뤄진다. 이런 치료 후엔 한약과 한방 기능성 화장품이 처방된다. 1회 치료비는 30만∼50만원 선으로 만만찮은 가격이다. 이진혁 참진한의원 원장은 "피부과 전문 한의원이 되기 위해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연수를 가고 도강(盜講)을 하는 등 서양의학 습득에 갖가지 노력을 다했다"며 "한방의 한계를 인정하고 이를 서양의학으로 보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 외에도 청담동 금산한의원,역삼동 예한의원 등이 이와 비슷한 피부질환 치료를 하고 있다. 피부질환 외에 디스크 등 정형외과 질환에도 양방 치료를 겸하고 있는 한의원들이 많다. 서울 신사도 자생한방병원의 경우 진단방사선과 전문의가 디스크환자의 척추 상태를 ?-선으로 진단하고 한의사가 추나요법과 한약으로 치료한다. 역삼동 원초당한의원도 디스크나 교통사고후유증 만성요통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양방의 재활의학 전문의보다도 더 많이 전기침(IMS)을 활용하고 있다. 비만전문 한방병원도 서양의학 기법을 활용하고 있다. 잠원동의 기린한방병원은 비만 개선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 5억원대 컴퓨터단층촬영기(CT)를 운영하다가 의사들의 반발에 부딪혀 영업정지처분까지 당했으나 지난해 12월 승소해 CT를 계속 사용하고 있다. 한의학 관계자는 "오장육부의 조화 등 한의학적 원리에 기초해 한약 침 등을 처방하고 서양의학 치료는 치료 효과의 시너지를 올리기 위해 도입하고 있다"며 "앞으로 서양의학 기법을 활용한 한의원들이 더욱 많이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