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나의 결혼 원정기'‥ 우즈벡 처녀 '다 자빠뜨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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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자빠뜨러."
농촌 노총각 만택(정재영)이 우즈베키스탄 공항에서 직원들에게 강제 출국당하면서 연인을 향해 이 말을 연신 외치는 절정부는 사뭇 감동적이다. '섹스에 성공했다'는 우리네 은어와 비슷한 발음의 이 말은 우즈베키스탄어로 '내일 또 보자'다. 신부감을 구하려고 타국에 온 만택이 외우고 있는 유일한 현지어기도 하다.
황병국 감독의 휴먼드라마 '나의 결혼원정기'는 유하 감독의 '결혼은 미친짓이다'의 대척점에 서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변질되기 쉬운 사랑의 속성에 냉소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환상을 기필코 실현하려는 사람들에 관한 드라마다. 우리네 농촌 노총각들의 시름과 열망이 이국 풍광을 배경으로 유머러스하게 그려져 있다.
주요 인물은 고지식한 만택과 유들유들한 희철(유준상),대머리가 벗겨진 중년 두식(박길수)과 현지 통역사 라라(수애)다. 이들의 '연애여행'을 이끌어가는 사건은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문화충돌 때문에 빚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즈베키스탄이란 배경은 오히려 인물들이 '작업'에 집중토록 해주는 장치다.
한국 노총각들이 우즈베키스탄 여인들에게 거는 '작업'은 여느 연애와 다르지 않다. 설령 조건이 우선시되는 '초고속' 국제 결혼이라 할지라도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사랑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영화는 사랑이 국경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정서며 온갖 역경을 이겨내는 힘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무엇보다 주인공의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올려 정점에서 터뜨리는 구성이 뛰어나다. 그 구성에선 예상외로 긴 도입부가 한몫을 한다. 농촌 노총각의 깊은 고뇌를 30분 동안 전개하는 도입부는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위험이 있었으나 인물들의 고뇌가 깊어지면서 감정을 고조시키는 효과를 낸다.
노총각 만택은 요즘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캐릭터다. 그는 여자 앞에서 고개도 제대로 못드는 숙맥이다. 대사와 표정,복장과 걸음걸이에서는 영락없는 농사꾼의 풍모가 배어난다. 그러나 유준상이 맡은 희철의 심경변화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그는 별다른 계기도 없이 우즈베크 여인을 멀리하다가 다시 그녀를 찾는다.
23일 개봉,12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