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교원평가는 국민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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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준 < 딜로이트 투쉬 파트너 >
네팔은 히말라야 산맥 지역으로 세계 산악인들에게는 동경의 땅이지만,국민들에게는 1인당 GDP(국내총생산) 200달러 수준에 문맹률은 70%를 넘는 빈곤의 땅이다. 산악인이나 오지 관광객들만이 드나들던 이곳에 우리나라 조기유학생이 나타났다고 한다. 네팔의 외국인 학교를 졸업하면 미국 대학에 입학할 때 세계 최빈국 할당 쿼터에 포함돼 대학진학이 쉽다는 것이 이유다. 미국 캐나다 호주로 떠나던 조기유학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을 거쳐 이제는 아프리카와 네팔로도 확산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글로벌 스쿨 쇼핑족이 되고 있는 씁쓸한 현상이다. 경제대국이라는 우리나라의 교육능력이 이들보다 못해서가 아니다. 문제는 교육시스템에 있는데 이는 최근 교원평가제를 둘러싼 논란을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정부는 교원평가제 시범실시를 위한 관련단체와의 합의도출에 실패한 뒤 이를 강행할 방침임을 밝혔고 교원단체는 연가투쟁 불사를 외치며 반대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교원단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노동자'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자는 자신의 근로능력을 사용자에게 제공하고 상응하는 대가를 받는 사람이다. 노동의 질은 천차만별이기에 사용자는 노동자 능력에 따라 합당한 대우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사용자란 돈을 주는 사람이고 교원들의 사용자는 세금을 내는 국민이다. 정부는 국민을 대리해 정책을 집행하므로,정부가 사용자인 국민을 대리해 필요시 '노동자'인 교사들을 평가하겠다는 것은 권리이자 의무다. 더욱이 금번 평가는 교사 상호간 평가를 기본으로 한다는 점에서 교원들의 입장을 완전히 무시한 것도 아닐 뿐더러,사실 평가라는 말을 붙이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한국경제신문에 따르면 네티즌의 75%가 교원평가 강행에 찬성하고 있는데,학부모만을 대상으로 조사하면 찬성비율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사용자인 국민이 교원평가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관련단체들은 겸허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피터 드러커는 "측정할 수 없는 것은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는 것은 개선할 수 없다"라고 갈파했고,미국 온라인 경매회사 e베이의 초고속 성장의 주역인 여사장 맥 휘트먼은 '측정불능이면 관리불능'이란 경영신조를 갖고 있다. 효율화란 측정의 범위를 넓혀서 관리의 품질을 높이는 것이고,측정자체가 이뤄지지 않는 상태라면 혁신이니 개혁이니 하는 논의 자체가 뜬구름 잡는 논란을 벗어날 수 없다. 학생의 능력차는 고사하고,교사의 능력차도 부인하는 상황에서는 교육투자를 늘려봐야 밑 빠진 독에 물붓기 식이고,이는 결국 납세자인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교육을 만사(萬事)의 근본이라고 하는데,우리 사회에서는 교육시스템이 만병(萬病)의 근원이 되고 있는 느낌이다. 평준화 정책의 부작용인 부동산시장 왜곡,연간 100억달러로 추산되는 대외 교육수지 적자,기러기 아빠로 상징되는 가정파탄 등이 교육제도와 직간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특히 심각한 것은 교육문제가 고령화사회로 변하는 우리 사회의 근간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중년층은 교육비 부담 때문에 노후대책을 제대로 설계하지 못하고,이는 20~30년 후 노령층의 심각한 생활자금 부족을 예고한다. 청년층이 자녀교육 부담으로 출산을 꺼리는 상황에서 정부의 출산장려정책이 효과를 얻기는 어렵다.
인간이란 자기 자신의 희생을 감수할 각오는 할 수 있지만,자식까지 제도의 무능에 희생되는 것을 감수하기는 어려운 존재다. 기러기 아빠는 이제 일부 부유층의 호사가 아니라 평범한 중산층 아버지의 절실한 선택으로 확산되고 있다. 교원단체들은 자신들의 공급독점권만을 주장하기 보다 수요자인 국민들의 소비자 주권도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옳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