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원 재정경제부 제1차관이 최근 잇따라 정례 기자브리핑에서 한 말이 화근이 돼 '설화(舌禍)'를 겪었다. 박 차관은 브리핑에서 '강남 재건축 규제완화'나 '스크린쿼터(국산영화 의무 상영일수) 축소' 등과 같은 문제에 대해 언급한 것이 의외의 논란을 일으키면서 번번이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박 차관은 지난 4일 브리핑에서 "한국 영화의 경쟁력이 높아져 스크린쿼터의 실익이 별로 없다"며 "스크린쿼터는 여러가지 보완책을 강구하면서 축소하는 방안을 관계 부처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기존 방침을 재차 설명한 것 뿐이다. 그러나 한ㆍ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스크린쿼터 축소 음모가 진행 중이라고 주장하는 영화계는 즉각 성명을 내고 "박 차관의 발언을 개탄한다"며 공격했다. 스크린쿼터 축소를 결사 반대하는 영화인들은 박 차관 발언을 '정부의 일방적인 스크린쿼터 축소 추진'으로 과잉 해석해 반발한 것이다. 사태가 심상치 않자 그날 오후 재경부 담당 국장은 부랴부랴 기자실로 내려와 "스크린쿼터와 관련해 정부 방침은 정해진 게 없다"며 차관의 오전 발언을 뒤집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박 차관은 또 지난달 27일 브리핑에선 "정부가 강남 아파트 재건축을 언제까지 막아 놓을 순 없다"며 "강남 재건축은 투기가 일어나지 않을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면 규제 완화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가 곤혹스런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투기방지 장치 마련'이란 전제 조건을 달았지만 그 말이 마치 정부가 강남 재건축 완화를 추진할 것 같은 뉘앙스로 비치자 청와대가 진의 파악에 나섰고,박 차관은 해명에 진땀을 빼야 했다. 박 차관의 연이은 설화를 지켜보면 왠지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한 경제관료의 염려도 마찬가지다. "강남 재건축이나 스크린쿼터 등은 찬반이 첨예하게 갈린 이슈이기 때문에 당국자가 어떤 말을 해도 한쪽으로부터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쨌든 정부내 대표적인 시장경제주의자이자 소신파인 박 차관의 언급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해 공격하는 일이 그렇지 않아도 좁아진 경제관료들의 입지를 더욱 좁히지 않을까 걱정이다." 차병석 경제부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