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8일 국회에서 개최한 금융산업구조개선법(금산법) 공청회에서는 재벌개혁을 둘러싼 우리사회 내 양극단의 시각이 한치의 양보없이 맞붙었다. 표면적으로는 위헌여부 등 법리논쟁을 하는 듯이 보였지만 그 이면엔 재벌개혁의 상징처럼 돼 버린 삼성그룹의 소유구조를 이번 기회에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려는 개혁세력과 이를 막으려는 안정세력간의 대립이 본질적 차이를 이루고 있었다. ◆강제매각이냐,현실인정이냐=이날 토론의 핵심쟁점은 삼성생명과 삼성카드가 금산법상 한도를 초과해 갖고 있는 계열사 지분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문제였다. 이동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과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고동원 건국대 법대 교수는 한도 초과분을 예외 없이 강제매각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와 황정근 변호사,임영록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은 소급입법을 이유로 삼성카드에 대해서만,그것도 의결권만 제한하자는 입장이었다. 김 소장은 "한도초과 지분에 대해 사후적으로 승인을 신청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한 뒤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처분명령을 내리는 것은 소급입법에 의한 위헌이라고 볼 수 없다"며 두 회사에 모두 처분명령을 적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위원도 "의결권 제한만으로는 위법상태를 시정할 수 없으므로 처분명령이 필요하다"며 강제매각 방안을 제시했다. 반면 황정근 변호사는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취득은 금산법이 제정된 1997년 이전에 이뤄진 것이므로 법 위반이 아니며,따라서 이에 대해 의결권 제한이나 처분명령을 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황 변호사는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주식 취득에 대해서는 "설사 1997 법 신설 당시부터 처분명령제도가 있었다고 가정하더라도 무승인 주식취득일로부터 5년이 지난 이제 와서 처분명령을 하면 명백히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한 행정처분이 될 것"이라며 "하물며 그동안 처분명령 제도 자체가 없었다가 이제 그 제도를 신설해 무차별 적용한다는 것은 그 어떤 거창한 목적을 내세우더라도 도저히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강제매각 조치는 재산권의 과도한 제한이란 점에서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며 "매각명령이 내려져 몇 조원 단위의 주식물량이 상장 및 비상장시장에 쏟아질 경우 엄청난 부작용이 예상된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많다"고 밝혔다. ◆'재벌개혁'에 대한 시각차= 윤 교수는 "이 사안에서 근본적인 것은 대기업집단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기본적 시각의 문제"라며 "대기업 집단의 선단적 계열구조가 단기간에 고도성장을 이룬 배경이 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때 모범답안이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지던 지배구조문제도 각국의 역사와 배경에 따라 다양한 형태가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면서 "정답이 없는 문제인 데도 정답이 있다며 그 정답을 모두 따르라는 논리는 무리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이 위원은 "금산법을 놓고 재벌해체론,민족자본론,자유시장경제,삼성 때리기 운운하는 것은 사안의 본질을 왜곡·은폐하려는 경제적 색깔논쟁"이라고 꼬집었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