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傭兵호칭‥황성혁 <황화상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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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혁 < 황화상사 사장 shhwang@hwangnco.com >
언제부터였던가 우리 주위에서 용병이란 말을 자주 듣게 된다.
특히 외국인 운동 선수들을 거리낌 없이 용병이라 부르고 있다.
호쾌한 홈런 타자도,축구장의 환상적인 골잡이에게도,멋진 덩크슈터에게도 심지어 아름다운 외국인 여자 농구 선수들에게도 그 호칭이 사용된다.
신문이 그렇게 쓰고 TV에서도 그렇게 부르고 더구나 그들을 다독거리고 있는 감독까지도 자기의 선수들을 용병이라 부르고 있다.
용병이란 남의 나라에 가서 남의 나라를 지키거나 남의 나라의 전쟁을 치르는 사람들을 말한다.
범법자들이거나 자기 나라에서 받아 들여지지 않는 과거를 가진 사람들로 알려져 있었다.
거기서는 과거를 묻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고,그들은 오직 돈을 위해 하루 하루의 혹독한 나날을 살아가는 군인들이었다.
살아 온 곳을 잊고 돌아 갈 고향이 없는 사람들의 거칠고 건조한 어두운 삶,거기는 그런대로 세기말적인 퇴폐적 아름다움도 있어서 지난날 '모로코' '외인부대' 등의 영화와 그 영화들에 출연했던 전설적인 영화배우들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용병이라는 말에는 나름대로의 비장미가 있으나,우리나라에 와서 우리 선수들과 떳떳이 운동을 하고 언젠가는 그들의 사회로 건강하게 돌아갈 외국 선수들을 용병이라고 부르는 것은 큰 실례일 것 같다.
외국인 선수들은 그들이 용병이라고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알고 있다면 그들은 우리사회의 무감각함을 경멸할 것이다.
우리의 박찬호 선수를,최희섭 선수를 미국 언론들이나 그들의 감독들이 용병이라고 부른다면 나는 분노할 것이다.
박지성 선수를 영국 언론은 결코 용병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들은 언어를 사용하는데 있어 우리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심하고 세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말 한마디가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낸다.
그 사회에서 쓰이고 있는 언어가 그 사회의 품위의 높이를 보여 준다.
우리에게 와서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그 훌륭한 외국 선수들을 용병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어디 용병이란 호칭뿐이겠는가.
우리 사회에 흘러 넘치는 거칠고 부적절한 많은 말들을 그냥 두고 볼 것이 아니라,눈을 부릅뜨고 찾아 내어 바르게 고쳐 나가야 한다.
우리는 짧은 기간 세계에 자랑할 만한 경제 성장을 이루어 내었다.
세계적 문화 행사인 올림픽과 월드컵대회도 가장 성공적으로 치러 내었다.
이젠 그에 걸맞은 존경을 받을 처지가 되었는 데도 아직도 변방의 가난한 나라로 대접받고 있는 건 지구촌 가족들에게 보여줄 품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도층으로부터 서민들에 이르기까지,우리의 언어에서 행동거지에서 아직도 가난하던 시절의 모습을 털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언론계와 학계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사회 구석구석에서 악취를 풍기고 있는 부적절한 말들을 골라내어 정화시키는데 힘을 기울여야겠다.
말에 대한 정화는 우리의 과제이며,정화된 언어는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유산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