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식 < 경남대 극동문제硏 실장 > 북핵 해결을 위한 5차 6자회담이 개막됐다. 4차 회담 합의에 따라 예정대로 개최된 것 자체가 과거에 비하면 진전이라 할 수 있지만 문제는 회담 개최 자체만으로 4차 회담의 합의가 모두 이행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5차 회담에서는 무엇보다 9·19 공동성명의 구체적 이행을 위한 행동 계획을 마련하고 그 순서를 상호 조율된 조치로서 합의해내야 한다. 서로 주고받아야 할 것을 하나의 바구니에 담는 것이 지난 9·19 공동성명이었다면 이제는 어느 순서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 주고받아야 할 것인지 합의해야 하는 더 어려운 과제를 남겨 놓고 있는 것이다. 지금 초미의 쟁점으로 돼 있는 경수로 제공의 '시기' 문제는 그 중에서도 가장 풀기 어려운 이슈다. 북한은 자신의 요구를 최대화시켜 당장 경수로를 제공해줘야만 핵폐기를 시작할 수 있다는 입장이고 미국은 정반대로 북한이 핵폐기를 완료하고 NPT 복귀 등 국제적 신뢰를 회복한 후에만 경수로 제공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완고한 입장이다. 5차 회담에서는 북한이 약속한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의 포기'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해 갈 것인지도 합의해야 한다. 폐기의 대상과 절차뿐 아니라 각각의 과정에 상응하는 보상조치를 놓고도 북한과 미국은 힘겨운 논란을 벌여야 하는 처지이다. 당장 미국은 핵물질과 핵무기 및 핵프로그램의 리스트를 북한이 먼저 제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고 북한은 미국의 대북 신뢰를 먼저 보여 달라는 입장이다. 이처럼 복잡한 쟁점을 풀어야 하는 북핵 5차 회담인 만큼 그 전망과 관련해서는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선 희망스러운 관측은 최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평양 방문으로 북한이 유연한 태도를 보일지 모른다는 기대에서 비롯되고 있다. 후 주석이 기존의 북·중 우호관계를 감안,서울에 앞서 평양을 방문한 것은 적어도 북한에 대한 중국측의 적극적인 배려인 만큼 김정일 위원장으로서도 중국의 요구에 일정한 성의를 보일 것이라는 분석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또한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의 방북을 통해 북한이 핵연료 주기의 처음과 마지막 단계를 완전히 투명하게 할 것임을 밝힌 점,디트라니 북핵 대사가 북한에 일방적으로 요구하지 않겠다며 북한의 행동에 대해 상응조치가 있을 것임을 시사한 것도 북핵 해결 과정에 희망적 관측을 낳게 하는 요인이다. 그러나 여전히 5차 회담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부정적 요인들 또한 존재한다. 무엇보다 경수로 문제에 대한 북·미 간 입장 차이가 아직도 좁혀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회담 개최를 앞두고 한성렬 북한 유엔 주재 차석대사와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의 대응 발언은 북·미 간 간극이 아직도 넓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9·19 공동성명 이후 북·미 간 신뢰형성이 조금도 진전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4차 때와 달리 북·미 간 눈에 띄는 양자 접촉이 없었고 논의되던 힐 차관보의 방북마저 무산되면서 양자간 고위급의 진솔한 협상은 물 건너간 셈이 됐다. 북한이 경수로에 집착하는 것도 사실은 미국의 대북 신뢰를 확인하기 위한 실제적 담보로서 요구하는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이번 회담에서는 핵폐기 대 상응조치의 전 과정을 합의하기보다는 오히려 실천가능한 단계에 집중해서 논의하는 게 더 나을지 모른다. 즉 북한과 미국 모두 실제적인 첫 단계 행동조치를 가시화함으로써 북핵문제가 이제 해결의 프로세스에 진입했다는 안도감을 주는 것이 오히려 필요하다. 특히 일정의 구조상 중간 휴회기간을 갖게 됐음을 감안, 이번 1단계 회담에서는 각자의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교환하는 탐색전에 머물고 이후 2단계 회담의 성과를 준비하는 게 보다 효율적일 것이다. 일단 시작이 좋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