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 논설위원 >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다시 길고도 험난한 여정을 시작했다. 지난 9월 회담이 큰 틀의 방향만 잡았다면 이제 구체적이고 단계적인 행동방안을 놓고 미국과 북한 간의 양보없는 밀고 당기기가 이어질 것이다. 논란의 초점은 지난번 합의된 미국측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와 북한측의 '평화적 핵 이용 권리'에 모아지는 분위기다. 이 문제의 결론은 쉽지 않아 보인다.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북의 '핵 포기'가 최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과제인 것은 틀림없다. 북의 평화적 핵이용도 모든 핵 프로그램의 폐기가 확인된 다음에야 논의될 수 있는 문제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미국과 북한의 양자간 협상에 모든 것이 파묻히면서 정작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 하나가 잊혀지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원자력 관련 기술개발과 이용 권리다. 가장 중요한 것이 원자력발전과 핵연료 기술개발의 독자성을 확보하는 문제다. 그런데 그게 불가능하게 돼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9월 6자회담 공동성명은 "1992년의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남북 공동선언'은 준수♥이행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과거 노태우 대통령 시절 핵무기 배제에 초점을 맞춘 남북 간 합의였지만 이후 북한의 핵무기 보유선언으로 사실상 무효화됐던 것이다. 문제의 시발점은 바로 이 비핵화 선언이다. 여기에는 '남과 북은 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얘기인 즉슨 핵무기비확산조약(NPT)에 의해 주어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권한이자,원전(原電)기술 자립과 '핵연료 주기(週期)' 완성을 위해 필요한 기술개발 및 설비보유를 포기한다는 족쇄다. 이것이 이번에 되살아난것은 북한과 달리 핵물질의 취급과 처리에 관한 국제적 투명성을 확보하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 본다면 억울한 일이기도 하다.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는 핵연료를 만들고 원전 부산물을 처리하는 처음과 끝이다. 핵무기 개발을 위한 핵심기술이기도 하다는 점 때문에 국제적인 감시대상이다. 하지만 우리가 농축 우라늄 확보에서 재처리에 이르는 원자력 연료 주기를 완성하지 못함으로써 결국 값비싼 연료를 외국에서 사들여야 하고,최악의 경우 연료공급이 중단되면 원전가동마저 멈춰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우리는 전력의 40% 이상을 원자력에 의존하는 세계 6위의 원전대국이고, 농축 우라늄 수입에 연간 3억달러 이상을 지불하고 있다. 최근 중저준위 핵폐기물 처분장 건설이 겨우 해결단계로 접어들었지만,당장 고준위 폐기물 대책도 발등의 불이다. 그 해법이 재처리다. 차세대 원자로인 고속증식로(高速增殖爐) 연구나 개발을 위해서도 재처리 시설확보는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북핵문제가 해결되더라도 우리에게는 큰 숙제 하나가 남겨지는 셈이다. 북한이 완전한 핵포기의 수순을 밟은 다음에는 우리의 원자력 연료 주기 문제도 진지하게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kunn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