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봉 <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전윤철 감사원장이 역사적 임무를 다한 공기업은 사라져야 한다고 뼈 있는 한마디를 했다. 우리나라 공기업의 문제점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우리나라는 경제개발기에 중요한 사회적 인프라의 건설을 정부나 공기업이 직접 담당했다. 철도,도로,통신네트워크,전력ㆍ가스ㆍ지역난방을 비롯한 다양한 에너지공급설비,다목적댐,각종 수리시설 및 농업기반시설 등에 대한 건설이 그것이다. 경제개발기에 우리 공기업은 비교적 성공적으로 사회적 인프라를 건설해 경제성장에 기여했다. 그러나 이제는 인프라의 건설수요 증가세가 선진국 수준으로 점차 완화돼 가고 있다. 아직 주택 택지 등과 같은 부문은 여전히 크지만 인구의 정체와 경제성장률의 안정화로 머지않은 장래에 그 성장세가 둔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사회 여러 부문에서 '건설'에 대한 수요는 성숙돼 가고 있어 이제는 효율적인 '운영'이 보다 중요한 명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처럼 건설수요의 성장세가 줄어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인프라와 관련된 많은 공기업들이 지나치게 확장지향적인 중장기 경영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 공기업이 아직도 건설에 큰 미련을 보이는 것은 자체적으로 인프라 건설을 직접 담당하거나 관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상당수 공기업들이 건설과 관련된 임직원의 일자리를 유지하려다 보니 사회적 수요와는 동떨어진 건설목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선진국에서는 공기업이 담당하는 건설공사의 상당부문을 민간의 건설회사가 턴키방식으로 일괄수주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공기업이 직접 건설의 종합관리를 맡고 있으며 민간에는 설계,시공,주기기 제작 등 부분적인 일을 맡길 뿐이다. 일례를 들자면 한전은 지금까지 발전소를 건설할 때 자체적으로 종합건설관리를 맡았기 때문에 민간 건설회사들이 턴키로 발전소 건설을 국내에서 완공한 실적이 없이 부분적으로만 참여해 왔다. 그 결과 해외건설시장에서 발전소 공사를 부가가치가 높은 턴키베이스로 수주하기가 무척 어렵게 됐다. 공기업이 건설의 노른자를 다 쥐고 있으니 민간이 이 부분에서 할 역할이 크지 않은 것이다. 공기업의 또 다른 문제는 상당수 공기업이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전력ㆍ철도ㆍ가스ㆍ지역난방ㆍ통신 등과 같은 네트워크 산업의 경우 이른바 자연독점적 특성으로 인해 독점공기업식 운영이 정당화돼 왔다. 이러한 산업에서는 경쟁압력이 존재하지 않아 효율성 향상 노력이 저조하다. 또한 방만한 경영과 조직의 비대화가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자연독점적인 네트워크 산업의 기능을 적절하게 분리한다면 경쟁을 도입할 수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례로 전력의 경우 송전은 독점이 불가피하지만 발전과 판매부문에서는 경쟁을 충분히 도입할 수 있다. 이러한 논리로 한전의 발전부문이 6개 발전자회사로 독립됐던 것이다. 그러나 아직 한전의 발전자회사는 민영화되지 못하고 있으며 배전 및 판매에서도 경쟁이 나타나지 못하고 있다. 100% 자회사가 모회사에 전기를 파는 기형적인 경쟁방식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한전의 발전과 배전 및 판매부문을 비롯해 천연가스, 지역난방,철도 및 상하수도 부문에서 경쟁도입과 민영화가 진행돼야 한다. 네트워크 산업에서도 경쟁과 민영화가 논의되는데 민간이 경쟁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안전관리,시설관리 및 유지보수 등의 분야는 말할 것도 없다. 공기업에 독점적 지위를 부여하는 각종 법률과 정부의 공공계획을 재검토해야 한다. 이제 민간의 할 일을 빼앗는 공기업은 역사적 임무를 다했으니 명예롭게 퇴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