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열린우리당은 중소기업인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열린우리당측이 요청해 만들어진 이 자리에서 중소기업인들은 정부와 여당에 대해 쌓여 있던 불만을 쏟아냈다. 한 조합 이사장은 "대통령도 왔다갔고 당 대표도 새로 될 때마다 찾아와서 정책건의를 듣고 갔지만 업계의 요구가 받아들여진 게 하나도 없다"며 "이런 생색내기용 자리는 그만 만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열린우리당이 중소기업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말만하지 말고 하나라도 행동으로 보여 달라", 심지어 "중소기업을 살리는 게 아니라 죽이고 있는 중기청장부터 바꿔야 한다"는 과격한 발언까지 나왔다. 기자가 과문한 탓일 수도 있지만 중소기업인들이 이처럼 정부와 여당에 직설적으로 불만을 표출한 것은 전례가 없는 듯하다. 물론 이런 목소리가 모든 중소기업인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중소기업 정책에 대한 업계의 불신과 불만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만큼은 확인시켜 준다. 현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은 지난 해 7월7일 나온 '중소기업경쟁력강화종합대책(7ㆍ7대책)'을 근간으로 한다. 300만개나 되는 중소기업들을 다 지원하기는 어려우니 혁신선도형 중소기업들만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그동안 보호위주의 정책에 안주해 있던 중소기업들을 경쟁체제로 몰고가겠다는 게 핵심이다. 그 구체적 실행계획으로 혁신선도형 중소기업들을 육성하기 위한 금융 보증 투자 경영컨설팅 등 종합지원책과 벤처활성화 대책 등이 나왔다. 또 단체수의계약 고유업종제도 등 기존의 보호막 정책은 폐지한다는 방침이 세워졌다. 정책의 방향이 이렇다 보니 지원대상에서 배제된 소위 '굴뚝형' 중소기업들이 불만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단체수의계약의 폐지에 대해선 해당 조합에서 거의 '공포'에 가까운 위기의식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런 불만과 위기의식을 그저 기득권 유지를 위한 반발이나 엄살로 몰아세울 일만도 아니다. 중소기업들이 그동안 정책자금이나 단체수의계약에 의지해온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국내 금융회사들의 '비올 때 우산 빼앗기'식 대출행태 등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이런 점에서 기자는 '7ㆍ7대책'보다 한 달 정도 앞서 삼성경제연구소가 내놓았던 '선진국의 중소기업 육성정책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참고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 보고서는 미국 독일 핀란드 싱가포르 일본 등의 중소기업 정책을 정부의 시장개입 정도에 따라 스펙트럼으로 분류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선진국은 경제발전 단계와 국가적 특성을 감안해 차별화된 맞춤형 정책(tailored policy)을 구사하고 있다"는 대목이다. 즉 중소기업 정책은 지고지선의 모델이 있는 것이 아니며 각국의 사정에 맞춰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중소기업 정책도 과연 한국의 사정에 맞는 것인지 업계와 당국이 다시 한번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임혁 벤처중기부장 limhyu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