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라싸에서 티베트 북쪽 칭하이성의 거얼무(格爾木)를 연결하는 칭짱궁루(靑藏公路)를 달린다.


티베트의 3대 신호(神湖)로 꼽히는 나무춰(納木錯) 호수로 가는 길이다.


맑게 갠 푸른 하늘의 흰 구름과 길 주변의 초원에서 풀을 뜯는 양떼와 야크떼들의 모습은 들뜬 마음을 가라앉게 만든다.


야크나 양들의 배설물을 주우러 다니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이들의 배설물은 말려서 연료로 쓰는데,냄새가 거의 나지 않고 화력도 우수하다.



[ 사진 : 녠첸탕그라산맥의 눈과 얼음이 녹아들어 형성된 티베트 라싸 서북쪽의 나무춰 호수. 하늘이 호수에 어려 눈이 시리도록 푸른 빛을 발하고 있다. ]


길가의 허름한 식당에서는 대부분 동물의 배설물로 난로를 피우고 찻물도 끓인다.


음식을 만들던 손으로 배설물을 부삽으로 퍼 난로에 넣는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이방인의 눈에는 거슬릴 수도 있지만 이곳 사람들에겐 척박한 환경에 순응하면서 사는 방편일 뿐이다.


라싸에서 87km가량 달리자 중국 최대의 지열(地熱)지대인 양바징(羊八井)이 나온다.


큰길에서 3km쯤 떨어져 있는 양바징은 온천과 지열발전소,간헐천,온수호(溫水湖)와 온수천(溫水川) 등이 밀집한 곳.광활한 초원 위에서 증기구멍들이 내뿜는 김이 멀리서도 보일 정도다.


티베트 사람들은 이곳의 지열 덕분에 대량의 연료 공급 없이도 라싸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었고 지열로 난방은 물론 농업용 연료까지 해결한다.


다량의 광물이 함유된 온천수는 각종 질병 치료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막상 온천에 가보니 손님은 없고 기념품을 파는 상인들만 무료함을 달래고 있다.


온천욕의 기대를 접고 양바징을 지나 다시 길을 달리다 보니 저 멀리 녠칭탕그라 산맥의 주봉인 녠칭탕그라봉이 새하얀 눈을 인 채 우뚝 서 있다.


라싸시 구역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당슝현 근처에 이르자 설산의 모습은 더욱 뚜렷해지고 곧 나무춰 자연보호구에 도착했다.


티베트어의 '춰(錯)'는 호수라는 뜻.나무춰 호수로 들어가는 길목의 자연보호구 입구에는 나무춰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지도와 함께 벽에 새겨져 있다.


입장료를 내고 자연보호구에 들어서자 길은 나무춰를 동남쪽에서 받치고 있는 녠칭탕그라 산맥을 휘돌아 호수로 향한다.


발치는 초원이지만 머리와 어깨에는 흰 눈을 가득 인 설산들 사이로 난 포장도로를 따라 꼬불꼬불 올라가자 '해발 5190米(m)'라는 표지석이 서 있는 라켄라산 고개에 오른다.


자연호보구 입구에 새겨진 설명문에 따르면 당슝현과 나취 지역 반거현의 사이에 있는 나무춰 호수의 면적은 106만ha,호수면의 평균 해발이 4718m에 이른다.


세계에서 가장 높고 넓은 호수라는 설명이다.


동서 길이가 70km,남북간 너비가 30km에 이르니 사진 한 장에 다 담을 수가 없다.


'나무춰'는 티베트어로 '하늘의 호수(天湖)'라는 뜻.몽골어로는 '텅거리하이(騰格里海)'라고 부른다.


'텅거리' 역시 '하늘'이라는 뜻이다.


녠칭탕그라산의 얼음과 눈이 녹아 흘러들어 호수를 형성하는데 호수 안에 섬과 반도가 5개씩이나 있다.


라켄라 고개를 미끄러지듯 질주해 내려가자 호반으로 도로가 나 있다.


이 길을 따라 나무춰 호수에서 가장 큰 반도인 타쉬반도로 향한다.


호숫가에 펼쳐진 드넓은 초원은 야생동물의 천국이다.


곰,야생 야크,산양 등의 야생동물들이 호반의 초원에서 뛰놀고 초여름에는 들오리떼가 찾아와 번식한다.


또 동충하초와 설련(雪蓮),패모(貝母) 등의 진귀한 약재도 자란다고 한다.


타쉬반도에 이르자 오색의 타르초가 걸린 바위와 여행자를 위한 천막호텔이 먼저 탐험대를 맞는다.


이들을 뒤로 하고 호숫가로 향하자 그 입구에 마치 호수를 향해 기도라도 하는 듯 합장(合掌)한 모습의 바위 두 개가 타르초를 건 채 나란히 서 있다.


드디어 나무춰 호숫가.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그 하늘보다 더 푸른 물이 저 멀리 녠첸탕그라의 설산과 함께 빛나고 있다.


푸르다 못해 시린 듯한 물빛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가까이서 보니 파도가 출렁이고 있다.


그냥 잔잔한 파도가 아니라 제법 세찬 파도다.


과연 이곳이 해발 4700m를 넘는 고원 위의 호수란 말인가.


하지만 최고 깊이가 33m에 이르는,칭하이성의 칭하이(靑海) 호수에 이어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염호(鹽湖)라는 사실을 알고나니 과연 바다와 같은 호수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대자연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고 순응한다.


티베트처럼 척박한 자연환경에선 더욱 그렇다.


나무춰 호수 주변 바위마다 타르초가 걸려 있고 날씨가 좋은 날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호수 둘레를 돌며 '옴마니반메훔'을 외우거나 오체투지를 한다.


이방인들은 숨쉬기도 힘든 해발 5000m 이상의 고원에서 티베트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자연 앞에 던지며 머리를 숙인다.


하지만 삶이 늘 숙연하고 종교적일 수는 없는 것.호숫가에는 야크나 말에 티베트의 전통적인 안장을 씌우고 나와 호객하는 사람들,조잡한 목걸이와 팔찌 등을 집요하게 내미는 여인들,기념사진을 찍는 곳까지 따라와 손을 내미는 아이들이 여행자들을 괴롭힌다.


호반도로가 포장되면서 간신히 민박이나 하던 곳에 수십여동의 천막호텔이 들어서 성업 중이다.


종교와 삶은 그래서 함께 있는 것이 아닐까.


라싸(티베트)=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