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활을 접고 고향 장흥 바닷가에 '해산토굴'이라는 글집을 짓고 살고 있는 소설가 한승원씨(66)가 산문집 '이 세상을 다녀가는 것 가운데 바람 아닌 것이 있으랴'(황금나침반)를 펴냈다.


작가 스스로 "나의 여느 시집이나 소설집과 달리 모든 표현의 기교나 장치를 다 벗어던져버린 알몸 그 자체"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진솔한 글들을 담았다.


그는 어느 날인가부터 까칠까칠한 속내의가 거추장스러워 속옷을 뒤집어 입기 시작해 지금까지 그 버릇을 이어오고 있다고 토로한다. 이러한 속옷 뒤집어 입기는 단순한 삶의 모양에서 나아가 한승원이라는 사람의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그는 "내 삶에 있어서 나는 늘 은밀하게 속옷 뒤집어 입기를 해오고 있었다"('선문답하듯이 살아가는 토굴살이' 중)고 고백한다.


서울을 버리고 장흥 바닷가 마을로 이사가 버린 것이나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자기식의 소설만 쓰며 살아온 것,글이 잘 풀리지 않거나 성가신 일이 생기면 털어버리고 바닷가나 뒷산으로 산책을 나가버린 곤 하는 것들이 모두 결대로만 살지 않고 끊임없이 일탈을 시도해온 예라고 털어놓는다. 그는 나아가 필요 이상으로 스스로의 삶이 세상을 향해 민감하게 반응할 때면 이 은밀한 '속옷 뒤집어 입기'를 한번 시도해보라고 권유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손금을 잘 봐주던 짝이 "이 출세금이 집게 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 사이로 흘러버리지 않고 집게 손가락쪽으로 뻗어 올라갔으면 장차 굉장한 시인이나 소설가가 됐을 터인데…"라는 말을 듣고 몇달 몇해 동안 손금을 파 출세선을 집게손가락쪽으로 올라가도록 만들었다는 고백도 눈길을 끈다. 동림,강,강인 등 모두 작가가 된 자녀들에 관한 대목에선 자상한 아버지의 체취가 물씬 배어난다.


"너희가 써내는 소설 한 편 한 편을 볼 때 이 아비의 가슴은 어떤 느낌에 젖어드는지 아느냐? 기분좋은 음악이 흐르는 분위기 속에서 향긋한 포도주에 맛있는 생선을 먹을 때의 알맞은 취기와 포만감,무지개 위로 붕 날아오르는 듯한 어지러움,그리고 눈시울 뜨거워지고 울컥하는 목울음 같은 감격…." ('내 사랑스러운 한심한 영혼아' 중)


그는 "밤마다 은밀하게 손바닥 한복판을 피눈물 흘리며 바늘 끝으로 쪼아 새로운 운명선을 만들어가듯 작가로서의 길을 열어왔다"며 "아직 나는 평지에 나서지 못했으므로 이 몸이 살아있는 한 그 작업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