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부터 인기를 끈 영화 '007 시리즈'.이 영화에 나오는 특수장비 개발담당 'Q'는 늘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 낸다.


시계 볼펜 자동차 등에 첩보·살상기능을 추가한 미래장비였다.


여배우 못지 않게 이 신무기가 보는 재미를 더했다.


007이 이용하는 장비는 겉모양을 봐서는 살인무기인지를 알 수 없는 것이 특징이었다.


만년필이 폭탄이 되고,시계에서 줄이 나오고,자동차에서 미사일이 나온다.


요즘 말하는 기술의 융·복합화를 007영화는 일찌감치 보여줬다.


최근 들어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이 같은 007현상이 두드러진다.


각 기기 간 융·복합화가 급속도로 진행돼 외형만 봐서는 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다.


'아리송한'제품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사진기인지 휴대폰인지 계산기인지 캠코더인지 고정관념을 허무는 디지털 제품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디자인 고유영역을 파괴한다


모토로라는 최근 국내 시장에서 구식 수동카메라처럼 생긴 휴대폰 '모토그래퍼'를 출시했다.


이 제품은 1960∼70년대 유행했던 구형 카메라 같은 외형과 소재를 채택해 눈길을 끌고 있다.


겉모습만으로는 휴대폰인지 카메라인지 정체를 잘 모를 정도다.


특히 320만화소 카메라를 장착했고 오토포커스,2배 광학줌 등 다양한 디지털카메라 기능을 탑재했으며 디카용 플래시를 달아 카메라폰의 약점이던 야간촬영 기능을 보완했다.


빛의 상황에 따른 화이트 밸런스 조절도 가능하다.


삼성전자가 수출용으로 야심차게 개발한 초슬림 카드폰(SGH-P300)은 크기가 일반 신용카드와 같아서 지갑에 넣고 다닐 수도 있다.


외형은 초박막 계산기처럼 생겨 휴대폰이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두께 8.9mm에 130만화소 카메라와 MP3플레이어 기능 등을 두루 갖췄다.


같은 삼성전자의 최신형 캠코더 '미니켓 포토(SCD-K50)'는 명함 크기에 캠코더,디지털카메라,MP3플레이어,휴대용 저장 장치 등의 기능이 모두 내장된 융합 제품이다.


외형은 현대적 디자인의 디지털카메라와 거의 차이가 없고 디카기능도 전문디카회사의 제품들과 동일한 수준이다.


서울통신기술의 디지털도어록 'SHS-DS20'은 기존의 투박한 도어록 고정관념을 탈피,마치 문에다 조금 큰 슬라이드형 휴대폰을 붙여 놓은 듯한 모습으로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기능에서도 터줏대감 위협


융·복합화 제품 중에는 디자인 외에 기능에서도 전문제품 못지 않은 수준에 오른 게 많다.


게임 기능을 휴대폰에 접목한 게임폰들은 이미 전용 게임기 못지 않은 성능과 특수기능으로 젊은 층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팬택계열이 지난 5월 선보인 블루투스 3D게임폰 '큐리텔 PH-S6000'은 블루투스 기능을 활용해 게임폰 간에 무선으로 3차원 네트워크 게임을 즐길 수 있다.


LG전자의 게임폰 'SV-360'은 휴대폰 자체를 좌우로 움직이면서 게임 속 캐릭터와 함께 방향을 움직여가며 실감나게 게임을 할 수 있다.


한동안 뜸했던 고화소폰도 최근 사진촬영 기술이 강화되는 등 새롭게 거듭나면서 디지털카메라의 목을 죄고 있다.


삼성전자가 이달 중 국내시장에 선보일'800만화소 카메라폰(SPH-V8200)'은 고급 디지털카메라를 위협하는 수준의 제품이다.


800만 화소는 컴팩트형 디카로는 최고사양 제품에나 채용된 수준이며 렌즈교환식(DSLR) 고급카메라도 800만화소 이상 되는 제품은 그리 많지 않다.


800만화소폰은 외형도 앞면의 경우 수려한 타입의 휴대폰이지만 뒷면에선 세련된 디카 디자인을 채택했다.


자동초점에 디지털 4배줌,13가지 장면모드,8가지 필터효과 등 디지털카메라 수준의 기능을 모두 지원한다.


수동카메라처럼 다양한 색감을 연출할 수도 있다.


◆쭉쭉빵빵에 튀어야 산다


디지털 기기의 디자인 경쟁이 가속되면서 과거에는 상상도 못하던 독특한 디자인의 제품들이 속속 얼굴을 내밀고 있다.


소니코리아는 콩모양을 닮아 '소니 빈스(Sony Beans)'로 불리는 MP3플레이어 'NW-E300'시리즈를 출시했다.


인체공학적인 콩 모형 디자인으로 한손에 꼭 쥐어지는 이 제품은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층을 타깃으로 삼아 시장을 공략 중이다.


한편 휴대폰에서 불기 시작한 슬림바람은 다른 디지털 제품으로 확산되고 있다.


소니코리아는 최근 두께 20.4mm의 '씬'시리즈 디카 'DSC-T5'를 출시했다.


이에 앞서 삼성테크윈은 두께 17.7mm의 '#1 MP3'를,올림푸스한국은 18.5mm 두께의 'FE-5500'으로 디카시장의 허리살을 빼고 있다.


MP3플레이어에서도 애플의 '아이팟 5세대'가 동영상까지 재생하면서도 두께가 11mm(30GB),14mm(60GB)에 불과한 등 슬림화는 디지털기기 전분야에서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