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 시절 부하 직원들의 불법 감청을 지시 또는 방조한 임동원, 신건 전 국정원장이 전격 구속됨에 따라 이수일 전 국정원 2차장을 비롯해 도청 실무를 맡았던 과학보안국(8국) 직원 등의 사법처리 수위가 어떻게 결론날지 주목된다. 검찰은 국가 최고 정보기관의 전직 수장 2명을 동시에 구속하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도 "수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밝혀 도청 파문을 둘러싼 여진(餘震)은 국정원과 DJ정부 인사들 주변에서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검찰에 따르면 구속된 두 전직 국정원장 재임 당시 도청 연루자는 김은성 국내담당 2차장(구속)과 8국장 김모씨, 운영단장, 종합운영과장, 종합처리과장, 국내수집과장, R-2 수집팀장, 팀원 등 수십 명에 이른다. 휴대전화 감청장비(카스ㆍCAS)를 운영했던 6국 직원들까지 합하면 숫자는 더 늘어난다. 검찰은 김은성, 임동원, 신건 씨 구속영장에서 이들이 수십 명에 이르는 직원들과 `공모 관계'였다고 명시해 국장급 이하 실무자들에 대한 사법처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두 전직 원장이 구속됨으로써 김대중 전 대통령측이 정치적으로 난처해진 데다, 청와대까지 구속영장 청구가 적절하지 못했다는 반응을 보여 검찰이 계속 강공 드라이브를 걸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호남 민심이 `DJ 죽이기'라며 검찰의 도청 수사에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고 , 김영삼 정부 시절 안기부 수장들은 전원 법망을 빠져나가고 국정원 관련자들만 처벌받는 데 대한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는 것도 검찰로선 부담이다. 무엇보다도 수사 결과 드러난 충격적인 치부의 진실 앞에서 망가질 대로 망가진 국정원의 초라한 모습도 같은 국가기관인 검찰에 청와대 반응이나 호남 민심 못지 않은 짐이다. 이런 여러 정황을 감안한 듯 검찰 관계자는 "국정원은 매우 중요한 기관이고 두 전 원장도 대단한 일을 많이 한 분들인데 부득이하게 수사 측면에서 접근하게 돼 안타깝다"며 동정적인 속내를 털어놓았다. 따라서 검찰 안팎에서는 일단 두 전 국정원장 구속으로 대국적 차원에서 사법처리가 마무리된 만큼 나머지 관련자들은 선별적으로 불구속 기소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신건씨를 보좌한 이수일 전 차장이나 결재 라인에 있었던 8국장, 6국장 등 간부들은 불구속 기소하고 나머지 과장급 이하 직원들은 상명하복이 엄격한 국정원 조직의 특성상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점을 감안해 면죄부를 준다는 것이다. 국정원이 `원죄'를 씻고 사태를 빨리 수습할 수 있도록 두 전직 원장과 김은성씨를 제외하고 나머지 관련자들을 모두 사법처리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러면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소지가 있어 실현 여부는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엄단 의지를 밝혀 실무급 관련자들까지 모두 불구속 기소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지만, 최근 두산그룹 수사 등에서도 핵심 관련자만 처벌된 전례를 볼 때 그 가능성은 매우 낮은 편이다. (서울=연합뉴스) 이광철 기자 mino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