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부 시절 국정원장을 지낸 임동원(林東源), 신 건(辛 建)씨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면서 정치권에 몰아치고 있는 `도청 파문'과 관련, 한나라당이 복잡한 속내를 보이고 있다. `인권 정부'를 자임하던 국민의 정부 시절에도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도청 행위가 이뤄졌음이 사실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도 국민의 정부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은 삼가는 분위기다. 여기에는 최근 박근혜(朴槿惠) 대표가 김대중(金大中.DJ) 전 대통령을 예방, 양 측간 우호 분위기가 조성된 것도 한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DJ 정부에 대한 강공이 자칫 자신들에게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즉 홍석현(洪錫炫) 전 주미대사의 귀국을 계기로 안기부(현 국정원)의 불법도청 X파일 사건에 대한 수사가 가속화되면서 한나라당 관련 부분이 터져나올 개연성이 커진 상황을 염두에 두고 DJ 정부에 대한 공격을 자제하는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당직자가 "안기부 불법도청팀인 `미림팀' 사건이 걸려있는 한나라당이 이번 일에 대해서 강경하게 나간다면 마치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라는 셈이 된다"고 말한 것은 이 같은 분위기를 대변한다. 실제 당 일각에서는 `정치적 형평성' 차원에서 X파일 검찰 수사를 통해 김영삼(金泳三.YS) 정권 당시의 `범죄 사실'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의 분위기도 감지된다. 김무성(金武星) 사무총장은 이와 관련, "두 사안은 구분돼야 한다"며 "불법도청을 지시하고 집행한 사람은 응당 법의 심판을 받아야하지만, 불법도청에 의한 내용을 가지고 검찰에서 수사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불법도청 자료는 증거로 삼을 수 없는 것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이런 점에서 한나라당은 공세의 초점을 노무현(盧武鉉) 정권에 맞추는 모양새다. 광범위한 도청이 자행된 DJ 정부를 계승한 정권이 참여정부인만큼 그 수혜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논리다. 현 정권에서 도청이 이뤄지는지 여부에 대해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이 같은 연장선상에서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당직자는 16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검찰이 계속해서 수사한다면 노 대통령 쪽으로 (피해가) 갈 것"이라며 "검찰이 제대로 한다면 도청 결과물로 탄생한 정권도 무사할 일이 결코 없다"고 주장했다. 임태희(任太熙) 원내수석부대표는 "YS에서 DJ정부로 넘어올 때 인수인계 조치나, DJ에서 노무현 정부로 넘어오는 인수인계 과정이 다른가"라며 "도청근절 기회로 삼기 위해 국정원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명명백백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여옥(田麗玉)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도청의 독사과'를 어떻게 이용하고 그 결과물이 어떠한 상황을 가져왔는가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검찰은 역사적 진실을 밝혀낼 시험대에 올랐다"며 현 정권의 `도청 수혜' 여부를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편 집권 당시 안기부가 불법도청팀 `미림'을 운영한 것으로 나타나 도청파문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김영삼 전 대통령은 DJ정부 시절 도청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한 측근은 전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남권 기자 sout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