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착하고,성스럽고,싸움 잘하고,인자로우면서 효성스럽고,슬기로우면서 어질고,엉큼하고도 날래고,세차고도 사납기가 그야말로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다."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이마에 왕(王)자가 새겨진 호랑이를 이렇게 묘사했다. 이만하면 '백수(百獸)의 제왕'이라는 말이 전혀 손색이 없을 듯하다. 단군신화에 곰과 함께 등장하는 호랑이들은 1920년대까지만 해도 한반도 곳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일제의 무분별한 남획과 벌목이 자행되면서 그 후 남한에서는 호랑이가 멸종되다시피 했다. 지금은 백두산 인근과 시베리아 등지에서 200여마리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아직 3000여마리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벵골 호랑이와는 대조적이다. 백두산 호랑이로 통칭되는 한국 호랑이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험준한 산골에서 그 형체를 보았다느니 발자국을 보았다느니 하는 신고가 잇따랐으나 호랑이로 확인된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그 때마다 매스컴의 추적이 이뤄졌고 혹시나 하는 기대로 온 국민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호랑이에 대한 갈증은 1994년 중국의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이 해소시켜 주었다. 그는 한ㆍ중 수교기념으로 당시 중국을 방문한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수컷 '백두'와 암컷 '천지'를 선물한 것이다. 경기도 포천의 광릉숲에 살고 있는 이 부부는 11년 동안이나 후손을 만들지 못해 관계자들의 속을 태워 왔는데,이번 APEC 정상회의에 맞춰 또다시 중국 국가임업국으로 부터 암수 한쌍을 기증받았다. 이 시베리아산 백두산 호랑이들이 어제 특별수송기편으로 칙사대접을 받으며 한국에 왔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별도 제작된 특수우리에 실렸고,난기류를 만나지 않도록 기상점검에도 세심한 신경을 쓸 정도였다. 이들 또한 광릉수목원에 살면서 개체증식에 나설 것이라고 하는데,백두산 호랑이의 순수 혈통이 우리 땅에서 이어져 그 늠름한 기상을 여기저기 동물원에서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