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봉 < 중앙대 교수·경제학 > 지난주 남북미주자유무역지대 창설을 위해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아메리카 34개국 정상회의에 대해 이코노미스트지(誌)가 실은 논평을 보자. "'제국주의'를 외치는 반대시위자 5만여명 중에는 디에고 마라도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축구선수로는 지구촌 축구경기시장 덕분에 부자가 됐고,코카인 중독자로서는 국경을 넘는 마약거래에 의지해 사는 사람이다. 그의 동배(同輩) 우고 차베스는 국제무역을 통해 석유를 고가에 팔아 베네수엘라에 그가 건설 중인 '21세기 사회주의' 비용을 대고 있다." 지구촌 교역시장의 이익으로 말하면 세계에서 우리만큼 덕을 본 나라도 찾기 어렵다.오늘날 21개국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초청할 만큼 국력을 기른 것도 그 덕분이다. 누구보다 세계화의 이익을 이해해야 할 입장에 있는 이 나라에서 차베스적 이념과 마라도나의 행동 또한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늘고 있다. 우선 우리 대통령은 APEC 회의에 앞선 외신기자 모임에서 "무역하기 좋은 환경은 빈부 격차를 벌린다"는 생각이며 "APEC에서 국가 내,국가 간의 사회적 격차 완화 노력을 제안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의장국 대통령으로서 이 기회에 자신의 이념을 지구촌 정책으로 알리고,다른 나라 국내정책에도 한마디 훈수할 것임을 피력한 것이다. 세계를 향해 이렇게 메시지를 던지는 대통령이 민족주의 평등주의 지지자들에게는 자랑스러울지 모른다. 그러나 이 이념은 보편타당한 것인가. 세계의 정상들이 APEC에 온 이유는 주최국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인도 칠레 등에서의 경험과 같이 빈곤국가 모두에도 국제교역의 기회를 넓혀주는 것이 가난을 줄이는 가장 강력한 방법임을 확인하고,따라서 새로운 교역확대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국제적 무역증진은 이 시대의 조류(潮流)며, '세계화의 어두운 측면'에 대한 국가지도자의 강론은 듣기 거북한 '국제적 불평'으로 치부되는 것이다. 많은 우리 국민들도 이 어렵게 마련한 잔치를 열며 시대착오적 국민의식과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 국가 자태를 세계 만방에 광고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마라도나는 요새 특히 창궐한다. 말로는 통렬하게 미 제국주의를 공박하며 누구보다 더욱 미국에 의존해 사는 정치가.지식인들, 부끄러워 낯을 들 수 없을 이들에게 오히려 영광의 가도는 활짝 열려 있기 때문이다. 영화인들은 대표적 마라도나 집단이다. 영화스타들은 수출입국의 경제성장 덕분에 높은 광고수입 극장수입을 얻는다. 과거 가난할 때는 딴따라로 기피됐지만 오늘날은 청소년의 우상이 돼 부와 명성을 누린다. 그러한 이들이 가장 배타적 반(反)자유무역제도인 스크린쿼터를 사생결단으로 고수하며,그 비판자를 나라문화를 팔아먹는 매국노쯤으로 매도한다. 이들이 한류(韓流)수출은 무슨 면목으로 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다. 영화인들은 그들을 부유하게 만든 대한민국 수출에 과거 도움을 준 바 없으며,오늘날은 스크린쿼터에 매달려 한.미자유무역협정을 한발짝도 못나가게 한다. 이들에게 바람을 불어넣는 프랑스는 세계에 알려진 자유무역 훼방국이며,그들 자신은 스크린쿼터를 시행도 못하는 나라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바로 영미식 자유시장경제가 '제3세계의 거대한 빈곤'의 원인이라며 자유주의에 맞서 싸울 것을 선동하는 장본인이다. 프랑스는 목하 유럽연합의 농업정책개혁과 도하자유무역라운드 진전을 막겠다며 이른바 '이빨-손톱 마다않는 전투(tooth-and nail battle)'를 전개 중인데,한국 영화계가 바로 그런 꼴이다. 몸으로 덕보고 입으로 딴말 하는 자는 주제파악이 안되는 뻔뻔한 사람이라 경멸당한다. 과거 세계사적 경제기적을 이룬 민족이 21세기 들어 왜 이런 평가를 받아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