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노사 로드맵 쟁점부터 처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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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기 <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
최근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노사관계법.제도 선진화 방안(이하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의 처리방식을 놓고 협의한 결과가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노사 및 각계의 의견이 분분하다.
사안을 가급적 조속히 처리하려는 정부와 여당의 입장이야 이미 알려진 터라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앞으로 바뀔 노동관계법의 적용을 받아야 하는 노사의 입장은 착잡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종래 노동계는 노사관계 선진화방안에 대해 '노동권'은 약화시키면서 사용자의 '대항권'만 강화시켰다고 비판하고 전면 재검토를 주장했다.
2007년부터 교섭창구단일화를 전제로 한 기업단위 복수노조의 허용 및 전임자의 급여지급 금지 등 현행법의 시행을 주장하는 경영계 역시 불만이 많다.
학계에서도 부정적인 평가가 적지 않다.
노사관계의 현실과 관행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채 사안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노동법의 총체적 개선만을 위해 무리하게 밀어붙인 것이 잘못이라는 비판이다.
이에 따라 논의 주체인 노사정위원회에서는 2003년 9월부터 몇 차례 전반적인 내용검토를 했으나, 세부 쟁점에 대한 심층 논의를 공식적으로 전개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최근 노정 간의 갈등으로 노사정위를 통한 교섭.논의가 어려워지는 분위기가 짙어지면서, 결국 지난 9월 초에는 2년간의 논의를 종결하고 그 동안의 검토결과를 일괄 정리해 정부로 이송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 동안의 지루한 갈등과 번민의 시간 속에서 분명해진 것은 '우리 현실에 적합하면서도 성숙된 노사관계를 지향하는 공정한 규범의 마련은 공론화를 통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이해 당사자들 사이의 협의를 통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원칙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구체적 합의점이 형성되지 못한 원인은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이 노사의 관행과 의식의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다소 무리하게 추진됐던 점도 일부 있겠지만, 법개정으로 위험부담을 안기보다 현실에 안주하려는 노사의 자가당착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특히 10년 가까이 적용이 유예되고 있는 복수노조 허용.교섭창구 단일화와 노조전임자의 급여지원 문제는 당장 그 시행시기를 1년여 밖에 남겨두고 있지 않다.
현실적으로 적용되지 않는 법은 '죽은 법'이다.
현행법의 적용을 장기간 유예한 자체도 문제지만, 이를 다시 유예하거나 아예 폐기하는 것은 노사 간의 극단적 충돌뿐만 아니라 국제적 신뢰도 실추라는 점에서 상정하기 힘들다.
교섭창구 단일화 방식을 노동부장관이 정하지 못할 경우 노조의 자율적 단일화 실패가 사측 교섭거부의 정당사유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단체교섭 내지 노사간 자치규범의 공백으로 이어져 극심한 노사.노노 갈등을 야기할 공산이 크다.
전임자 급여지원 금지 역시 잘못된 관행의 시정에도 불구하고 노동계의 극한투쟁을 야기하거나 극단적인 노사간 힘겨루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우리 노사관계에서 합리적이고 공정한 규칙의 상실을 초래할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 노사 공멸의 전조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왜 34개냐 24개냐, 왜 이런 사안은 빼 놓고 저런 사안은 넣었느냐, 이 사안은 이렇게 저렇게 했어야 한다 등등을 놓고 입씨름할 때가 아니다.
ILO OECD 등 국제기구의 눈치를 보는 것도 한계가 있다.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쟁점의 해결을 위해 발휘되는 '사회적 파트너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력' 그리고 '공정한 법치(法治)를 기반으로 하는 자율적 노사관계'의 구축이다.
따라서 위의 두 가지 사안을 중심에 두고,노사간의 허심탄회한 논의 속에서 쟁점별로 완급에 따른 우선순위를 따져,관련사항을 점검.처리해 나가는 구체적 실천이 절실하다.
'도덕적 정당성'을 갖춘 법규범을 기초로 한 '성숙된 노사관계'는 마냥 미루어서도 조급해서도 될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