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18일 회담은 당초 예상대로 양측의 입장차만 확인하는 데 그쳤다. 특히 양국관계의 핵심 쟁점인 역사인식 및 과거사 문제에서 노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의 팽팽한 인식차가 드러났다. 지난 6월 청와대에서의 정례 셔틀회담에 이어 다섯 달 만에 이뤄진 재회였지만 고이즈미 총리와 일본 보수 정치인들의 잇따른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으로 싸늘하게 식은 한·일 관계 때문에 30분간의 회담장에는 냉기가 돌았다. 장소도 APEC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는 부산 벡스코 1층 의장실로 잡혀 바로 하루 전 노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4시간 경주회담과는 대조적이었다. 중국 후진타오 국가주석도 지난 16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과 국빈만찬을 나눴다. 그나마 당초 20분간으로 잡혔던 회동시간이 30분으로 늘어난 것도 신사참배에 대한 노 대통령의 강력한 문제제기와 이에 대한 고이즈미 총리의 해명이 길게 늘어졌기 때문이었다. 회담 분위기는 시작부터 심상치 않았다. 두 정상은 회담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덕담이나 조크를 배제한 채 APEC 정상회의 진행 상황을 첫 화제로 대화를 시작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먼저 회담장에 도착한 노 대통령은 1분 후 고이즈미 총리가 들어서자 "어서 오십시오"라는 짤막한 인사와 함께 악수를 한 뒤 자리로 이동했다. 노 대통령은 고이즈미 총리가 앞서 노 대통령의 1차 정상회의 사회와 관련해 "2시간 동안 아주 간결하게 얘기했다. 특히 마지막 맺음말을 잘 했다"고 칭찬하자 "감사하다"고 사의를 표명했다. 이어 두 정상은 바로 회담에 들어갔지만 예상대로 핵심 의제인 역사인식 문제를 놓고 평행선을 달렸다. 노 대통령은 역사인식 문제에서 일본측 자세에 대해'국민적 차원에서 수용불가' 입장을 강하게 천명했지만 고이즈미 총리는 일관되게 기존의 입장을 반복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이즈미 총리는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 "과거 전쟁에 대해 반성하면서 두번 다시 이런 전쟁을 하면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도 양보하지 않고 "이것은 본질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회담에 배석했던 정부 관계자는 "결국 과거사 문제,신사참배 문제를 길게 얘기하다가 시간이 다 돼 끝났다"고 말해 이견차가 컸음을 내비쳤다. 이에 따라 약속된 시간이 지나자 두 정상 가운데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서로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연말 일본에서 정례 셔틀회담을 갖느냐 마느냐는 아예 거론도 되지 않았다. 다만 북핵문제에서 협력이 잘 된다는 데 공감은 표시됐고,계속 협조키로 했다. 부산=허원순 기자 huhws@hankyung.com